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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200년 전의 자살이 예고한 영국의 브렉시트

등록 2019-01-16 11:11수정 2019-01-16 19:26

200년 전 절정에 오른 대영제국의 자만은 한 유능한 외교관을 자살로 내몰았지만 지금 조락하는 노쇠한 국가 영국의 착각은 국가 자체를 자살로 내몰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전하, 이제는 유럽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입니다. 전하와 저만이 유럽을 알았고, 구했습니다. 저의 뒤로는 유럽 대륙의 문제들을 이해할 사람이 없습니다.”

1822년 8월8일, 영국 외무장관인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는 국왕 조지 4세를 알현해 이런 말을 남기고는 나흘 뒤 자살했다. 캐슬레이의 자살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지병인 망상 증세를 악화시켰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캐슬레이는 당시 유럽을 참화로 몰아넣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반나폴레옹 동맹 연합군을 결성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심 구실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국제질서인 ‘빈 체제’ 구축을 주도했다.

그가 주도한 빈 체제는 현재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의 원형이다.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프랑스·러시아 등 유럽의 강대국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유럽의 안보질서 등을 협의하고, 이 체제의 참가국이 침략받거나 침략하면 집단적으로 대응하자는 체제였다.

하지만 그는 이 빈 체제의 첫 회의만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의회는 그의 회의 참석을 금지하고 빈 체제에서 영국을 철수시켰다. 영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 노선인 ‘영예로운 고립’의 절정이었다. 영국은 백년전쟁 이후 유럽 대륙의 문제에 얽혀들지 않으려 했고 유럽의 단결도 원하지 않았다.

영국은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대륙의 분쟁 위협에서 자유로운데다, 막강한 해군력이 있었다. 유럽에서 현존하고 임박한 위기가 있을 때 즉시 개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영예로운 고립’ 정책은 영국의 국력을 식민지 경영에 집중시켜 세계의 제국으로 만드는 초석이기는 했다.

하지만 캐슬레이는 유럽에 또다시 나폴레옹 전쟁 같은 분쟁이 벌어지면 영국의 패권은 위협받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패권국이 된 영국이 예방적으로 유럽 대륙의 질서 유지에 개입해 유럽의 세력균형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빈 체제의 근본은 영국의 철수에도 50여년간 지켜졌으나, 독일의 통일로 사실상 수명이 다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당시 영국 총리가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다. 세력균형은 완전히 파괴됐다”고 표현한 독일 통일은 결국 두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개입은 무력했고, 대영제국은 몰락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 영국 의회에서 15일 벌어진 브렉시트 논란과 결정은 영국이 또 한번 유럽에서 발을 뺀 것을 의미한다. 200년 전 영국은 제국의 세계 경영에 주력하려고 유럽에서 발을 뺐다. 자유무역 등을 기반으로 한 영국의 세계 경영은 현재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작이 됐다. 영국이 씨를 뿌린 글로벌라이제이션은 200년이 지나, 영국이 유럽에서 다시 발을 빼게 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야기한 영국 안의 양극화, 금융업을 제외한 산업 붕괴는 영국의 보수적 중하류층에게 유럽연합을 원흉으로 지목하게 하고 탈퇴시켰다. 유럽연합 탈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탈퇴 자체가 영국을 망하게 하거나,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영국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폐해 앞에서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 같은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인 영국 엘리트들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에 항의해 사임한 도미닉 라브 전 브렉시트 장관은 “잔류파는 영국의 번영이 그 입지 때문이고, 탈퇴파는 영국의 특질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라브 등은 ‘영국민들의 완벽한 용기와 결단이라는 민족적 특성’이 영국의 과거 영화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들에게 대영제국의 영화는 풍부한 항구와 석탄, 산업혁명에 기여한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이민자 등 지정학적 조건, 부와 병력을 전세계에서 조달할 수 있는 제국 시스템 때문이 아니었다.

“7600만 터키인이 유럽연합에 의해 비자면제 여행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 밖에서, 우리는 더 밝은 세계적 미래를 가질 것이다” 등의 브렉시트 진영 광고는 영국의 착종을 보여준다. 지금 영국이 겪는 국내적 침체와 쇠락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몰고온 폐해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이민을 배격하고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줄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200년 전 절정에 오른 제국의 자만은 한 유능한 외교관을 자살로 내몰았지만, 지금 조락하는 한 국가의 착각은 국가 자체를 자살로 내몰고 있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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