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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카미노 데 산티아고 / 고명섭

등록 2019-01-22 17:20수정 2019-01-22 19:30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곧 ‘산티아고 가는 길’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 피레네산맥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에 이르는 길이다. 해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이 오래된 순례길에 오른다. 하지만 이 평화의 길은 역설적으로 문명의 갈등과 분란 속에서 태어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만들어지기 전에 유럽 사람들이 선망하던 최고의 순례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차지한 뒤로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순례를 포기했다. 이슬람은 세력을 빠르게 확장해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지브롤터해협을 넘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다. 기독교 세력은 이베리아반도 북부 지역으로 쫓겨났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싸움이 끊이지 않던 9세기 초에 갈리시아의 조그만 마을에 예수의 십이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 지역 아스투리아스의 왕 알폰소 2세는 야고보 무덤 위에 새 교회를 세웠다. 교회가 들어선 마을은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을 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불리게 됐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독교 세계의 새로운 성지로 떠올랐고, 그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을 따라 산티아고 순례길이 닦였다. 이 순례길은 12세기에 최전성기를 맞아 한해 50만명이 이 길을 밟았다. 성 야고보 신앙으로 뭉친 산티아고는 이베리아 기독교인들의 레콩키스타, 곧 국토 회복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충돌 속에서 태어나 그 충돌 가운데서 다져졌다.

16세기 이후 역사 속에 묻혔던 이 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로 세계 전역에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분단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통일을 여는 길’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까지 286억원을 들여 강화도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456㎞를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평화의 길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분단의 역사를 관통하는 비무장지대 접경 길을 살림과 화해의 길로 만드는 것은 전쟁의 상처를 평화의 동력으로 바꾸는 일이다.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순례자의 땅으로 거듭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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