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정치팀 기자
최근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이 본격 정치행보로 의심받자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바로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언젠간 출마하겠지’라는 대중적 관심이 지속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의심’을 접었다. 그가 정치를 재개했을 때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을 절절하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365일 ‘을’의 위치로 무조건 가야 한다”고. 국회의원에 두번 당선됐고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낙선도 해본 전직 정치인이 밝힌 ‘정치를 할 수 없는 이유’다.
정치를 하지 않겠노라는 유 이사장의 고민에서 엿볼 수 있듯 지역구 국회의원의 삶은 고되다. 금요일에 지역구에 내려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국회로 돌아오는 ‘금귀월래’는 기본이요, 지역 일정을 챙기기 위해 주중에도 지역구를 ‘찍고 오는’ 일은 다반사다. 지역의 소소한 행사에 얼굴을 내밀려고 일주일에 케이티엑스(KTX)나 비행기를 여섯번 타는 의원들도 있다. 중앙당직을 맡아 지역구행이 좀 뜸해지면 “요즘 뻣뻣해졌다. 벼슬이 높아지더니 동네에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질타가 쏟아진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동네 평판에 민감해진 국회의원으로서는 지역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정책을 평가하거나 부조리한 제도를 고발하기도 하지만, ‘자식 취직 좀 시켜달라’, ‘공공근로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잘되도록 손 좀 써달라’는 민원도 섞여 들어온다. 국회의원 지역사무소에선 유권자의 민원엔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직접 연결되면 청탁은 더 과감해진다. ‘강제추행미수죄로 기소된 아들이 벌금형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중랑갑)의 ‘지인’은 2012년 총선 캠프 연락사무소장으로 일했던 지역구민이다. 서 의원은 국회에 파견 나온 판사를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로 불러 문제의 민원을 그대로 전달했고 청탁은 실현됐다. 중랑구민→서 의원→파견 판사→법원행정처 차장→서울북부지법원장→담당 판사에 이르는 5단계 청탁 구조에서 그 누구도 이를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흘려버리지 않았다. 한 원로 변호사는 “나도 법원장 시절에 이런저런 청탁 전화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냥 듣고 말았다. 그런 얘기가 어떻게 판사에게까지 전달될 수가 있나. 그런 점에서 서영교 의원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상고법원 설치 등 여러 현안을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이었던 서 의원의 마음을 사야 했고, 법원장과 담당 판사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행정처에 밉보이기 싫었을 거다. ‘표’가 절실한 서 의원에게 그 ‘지인’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중층적이고 연쇄적인 거래관계가 ‘강제추행미수죄 사법농단’을 완성했고 거래의 밑바탕은 언제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역구민과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였다.
국회의원은 ‘나의 사익’이 아니라 ‘우리의 공익’을 위해 대신 일하라고 뽑은 사람이다. 국회의원이 공공의 룰을 어기고 특정인의 사익에 복무하는 행위는 대의민주주의를 오염시킨다. 이런 불순물과 적폐를 제거하는 게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서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는 수사기관이 판단하더라도 촛불정권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일벌백계하고 통렬하게 반성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 그런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서 의원에 대한 동정적인 분위기만 그득하다. ‘부당거래’의 ‘내부자들’인가, ‘공범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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