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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주사파, 공안검사, ‘냉전 좀비’ / 신승근

등록 2019-01-30 18:01수정 2019-01-30 19:28

‘주사파(主思派): 1980년대 중반부터 세력을 떨친 우리나라 운동권 학생들의 일파.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웠으므로 주사파라고 하며….’(<두산백과>)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를 통해 1986년 3월 학생운동 일각에 주체사상이 유입됐다. 김씨는 1999년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가로 변신했지만, ‘주사파’라는 주홍글씨는 지난 30여년간 끊임없이 소환돼 정치적으로 악용됐다.

1987년 8월 출범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학생운동 대중화에 기여했다. 개헌 논의를 불법화한 ‘4·13 호헌 조치’로 장기집권을 획책한 전두환 정권을 상대로 6월 항쟁을 이끌며 ‘직선제’를 쟁취한 학생운동의 열기가 그 토대가 됐다. 노태우 정부는 ‘전대협=주사파=김일성 추종’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주력했다. 1989년 7월 ‘임수경 방북’은 큰 빌미가 됐다. 91년 국가안전기획부는 “전대협은 북한 대남 심리공작 기구의 지침을 추종하는 주사파 지하조직의 조종을 받는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1994년 7월엔 박홍 서강대 총장이 불을 질렀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대학 내에 주사파가 깊이 침투해 있으며, 주사파 뒤에 사노맹, 사노맹 뒤에는 북한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 그들은 북한 ‘로동신문’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지령을 받는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아무런 물증이 없었지만 그는 정계, 학계, 언론계에도 북한의 지원과 지령을 받는 주사파가 암약하고 있다며 논란을 증폭했고, 김일성 주석 사망 및 ‘조문 논란’과 맞물리면서 보수언론은 경악했다. 정부는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대대적인 주사파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중반인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임종석·이인영·우상호·오영식 등 과거 전대협 지도부를 영입하면서, ‘전대협=주사파’라는 주홍글씨는 ‘약발’이 다했다. 보수세력은 ‘주사파’로 몰았지만 국민은 정치를 바꿀 젊은 피, ‘386세대’의 대표로 인식했다. 이들은 16대,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고, 현실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황교안 전 총리가 29일 자유한국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국회를 장악했다. 문재인 정권이 망국을 고집하면 주저없이 거리로 나가겠다”고 했다. ‘486’ ‘586’으로 이제 기득권 정치인이 된 그들을 얼마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30여년 전 독재에 항거할 때 일부가 차용한 이념을 문제삼는 건 공안검사의 디엔에이만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민주인사를 때려잡고 간첩을 조작하던 공안검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퇴행”이라며 황 전 총리를 “유신의 관 뚜껑을 열고 나온 냉전시대의 좀비”로 규정한 민주평화당 논평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적지 않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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