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근 우리나라 정당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예전에 접했던 <월리를 찾아라!>라는 책이 떠오른다. 마치 그 책의 독자들처럼 정당들이 한국 사회의 갈등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전당대회를 앞둔 출마자들이 앞다투어 갈등을 찾고 있다.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핵무장’을 말하고, ‘좌파’와 ‘귀족노조’를 호명한다. 바른미래당의 한 정치인은 최근 ‘워마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면서 20대 남성 유권자들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다. 정당은 갈등을 먹고 자란다. 상대 정당과 자기 정당의 정체성을 가르는 갈등을 찾아내고, 갈등의 한 편을 대표하면서 지지와 표를 추구한다. 어떤 갈등이 가장 큰 득표의 이득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건 정당이라는 조직의 숙명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인구 구성, 유권자 지형을 월리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독자들처럼 분석하고 관찰하면서, 새로운 혹은 오래되었지만 중요한 갈등을 찾아낸다. 그리고 갈등의 한 편을 대표한다는 신호를 정당의 정책으로, 정치인의 말이나 이벤트로 구성해 유권자들에게 보낸다. 정당이 보내는 신호는 ‘모든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게 아니라, 지지를 얻고자 하는 유권자와 그 반대편에 선 유권자를 가르는 게 목적이다. 그래야 내 편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좌파’를 호명하는 건 스스로 ‘우파’라고 생각하는 유권자와 ‘좌파’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를 가르고 ‘우파’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다. 앞서 말한 ‘워마드’ 토론회를 연 정치인은 ‘워마드’에 반대하는 유권자와 찬성하는 유권자를 가르고 반대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보내는 정당의 신호가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떤 신호는 원하는 유권자집단에 가닿아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어떤 신호는 지지를 얻고자 하는 유권자들에게 가닿기도 전에 소멸하고, 때로는 잘못된 신호로 오히려 지지를 얻고자 했던 유권자집단의 지지를 잃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현대 민주정치의 일상적 과정이며, 정당의 순기능이기도 하다. 어떤 사회든 갈등은 있기 마련이고, 정치가 갈등하는 유권자들을 대표하고 조정하면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데 핵심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갈등이 아닌 것을 갈등으로 보이게 조작하거나, 정작 유권자의 삶에 중대한 갈등은 외면한 채 작은 갈등들로 호들갑을 떨면서 유권자의 눈을 가리는 것도 정당이 하는 기능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가 지역주의나 이념갈등이라고 주장하는 정당들은 그런 사례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의 갈등 가운데 ‘지역갈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10명 중 1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이념갈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크게 줄었다.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꼽은 사회갈등은 빈부갈등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20대에서 남녀갈등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늘긴 했지만 30대 이상에서는 빈부갈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압도적이다. 50대 이상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지금 자유한국당은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여전히 좌파니 우파니 변죽만 울리는 걸까? 대개 이런 경우는 갈등을 다룰 능력이 없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거나,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어느 쪽일까? 그 당의 신호는 지지를 얻으려는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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