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군사력이 아닌 기술력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국가를 그렸다. 설정보다 35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은 설정보다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술 독재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조지 오웰의 예상대로, 기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었다. 조지 오웰의 예상과는 달리, 국가는 그런 기술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1984>의 내용을 각색해서 1984년에 선보인 광고에서 애플은 아이비엠(IBM)을 독재자 빅브러더에, 애플을 혁명가에 빗댔다. 이 반란의 결과로 우리는 똑같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대신 똑같은 전화기를 손에 쥐게 됐다. 더 나은 기술의 승리와 함께 애플이 절박하게 호소했던 메시지는 획일적인 풍경에 묻혔다. 애플은 누구보다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 통일성에 집착하는 시장지배자이다. 아이비엠의 ‘생각하라’(Think)를 패러디하여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로 모토를 정한 애플의 기업철학은 ‘애플과 다른 것’은 철저한 불관용으로 응징한다. 구글은 ‘윈도’ 독점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와 밀어내기 전략에 살육당한 무수한 경쟁자 가운데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기업 모토마저 마이크로소프트를 의식해 ‘사악해지지 말자’라고 지었다. 하지만 차세대 시장지배자가 된 구글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전략을 그대로 모방했고, 불과 10년 만에 한때 마이크로소프트를 겨눴던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있다. 비트코인의 철학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권력의 통제에 저항하는 사이퍼펑크 운동에 뿌리를 뒀다. 암호와 분산화 기술을 이용해 신용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신뢰할 수 있는 개인간 금융거래를 실현하려는 아이디어가 담긴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9쪽짜리 우아한 소논문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비트코인의 성공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역사서에 기록될 최초의 승리로 여길 만하다. 하지만 ‘1984’ 이래 유구한 전통처럼 국가의 통제에 대한 기술혁신가들의 공포는 강박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약 비트코인이 통화로서 광범하게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지 국가의 보증 없이도 작동하는 화폐의 탄생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체 통화량의 97퍼센트를 상위 3퍼센트가 보유하고, 특히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 한명이 전체 통화량의 5퍼센트를 보유하는 화폐가 탄생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존재한 적이 없는 수준의 불평등이다.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어떤 국가의 정부도 그런 규모의 화폐독점에 근접해본 적은 없다. 정부의 통제를 피해간 곳의 미래가 겨우 그런 모습이라면, 사람들은 통제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지 않을까? 정보기술(IT)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듣는다. 혁신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혁신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과도한 규제는 혁신의 적이다…. 혁신의 개념은 혁신된 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택시와 우버, 내연차와 전기차, 중앙화와 분산화,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기술적 차이보다는 많은 것들에 대해 듣고 싶다. 세상에 없던 물건보다 세상에 남아 있는 낡은 질문들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는 혁신가들을 더 만나보고 싶다. 바로 이런 질문들 말이다. 혁신은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정치적 불평등이 부의 불평등으로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규제가 미치지 않는 세상에서 약자는 어떻게 보호될 수 있을까? 혁신은 지배 구조를 바꾸는가? 아니면 단지 지배자의 이름이 바뀌면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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