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이 시각 하노이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앞당길 수 있는 전환적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행정부와 국회는 후속 조처를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평화체제의 큰 틀 안에서 갈등이 조율되고 중대한 결정들이 제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또한 바란다. 최근 국회의 원내정치를 보면서 다당제의 이점을 생각하게 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곳에는 늘 일치되지 않은 갈등적인 목소리가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다투는 말싸움이 있다. 국회의원과 정당들의 이익이 적나라하고 첨예하게 충돌한다. 매일 오만가지 회의가 개최되지만 결정에 이르기까지는 하세월이다. 이런 모습들은 종종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불신을 낳지만, 이게 의회의 속성이기도 하다. 긴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인간들의 공동체가 갈등을 해결해온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폭력이었다. 지금도 국가 간 관계에서는 폭력의 우위를 다투는 갈등해결이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가 등장한 이후부터 적어도 정치공동체 내부에서는 총칼이 아닌 말로 갈등해결을 하는 것이 더 우월하다는 규범이 보편화되었다. ‘총칼 들고 싸우지 말고 말로 싸우자', 이것이 의회의 출발이었다. 또한 정당민주주의에서 의회는 주기적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된다. 각기 다른 정당 브랜드로 선출된 자들이기 때문에 ‘편 갈라 싸우는 것'은 의회의 중요한 속성일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정책과 비전을 약속한 정당들이 편 갈라 말싸움하는 곳'이 의회인 셈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결정하는 데에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름'을 정체성으로 하는 집단들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에 이르러야 하는 곳이다 보니, 무엇 하나 빠른 시간 내에 속시원히 해결되는 꼴을 보기 어려운 것도 의회의 속성이다. 이렇게 본다면 안 싸우는 의회가 아니라, 좀 더 분명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정당들이 규칙에 따라 잘 싸우는 의회가 좋은 의회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다수 의원들이 싸우지 않고 빠른 결정에 이르렀던 국회를 본 적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체제에서 국회의원 다수는 사이가 참 좋았지만, 그런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의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20대 국회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며칠 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5당 원내대표 모임이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무엇으로 정의하든, 회담의 성공은 원내정당들 모두의 합의 의제인 셈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은 선거법 개정을 위한 일명 ‘패스트트랙' 논의를 진행 중이다. 선거법 개정 내용은 정당마다 차이가 있지만, 현행 제도를 21대 총선 전에 바꿔야 한다는 의견과 바꿀 의사가 없어 보이는 자유한국당이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다. 손혜원 의원을 둘러싼 국회 논의에서는 국정조사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과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이 충돌하고 바른미래당이 청문회 개최로 두 당을 중재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시에 여러 의제에 대해 각기 다른 편이 만들어지면서 갈등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갈등 의제도 풍부해지고 있는 것이다. 2개의 정당만이 경쟁했던 때에는 어떤 의제든 찬성과 반대 두 의견만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찬성과 반대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대표되고 중재되면서 더 나은 의회정치를 위한 싸움의 기술이 축적되고 있다. 앞으로 국회의 이런 역동성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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