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리더십이 붕괴하면서 선거제도 변경을 협상할 수 있는 주체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은 소수 정파의 맹목적 반대로 입법이 마비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다.
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은 소수 정파의 맹목적 반대로 입법이 마비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다.
정치팀 선임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요즘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깨졌다. 2·27 전당대회 이후 당 지지도가 상승세다. 차기 대선주자 경쟁에서 여야 통틀어 황교안 대표가 1등이다. 2020년 4·15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3년 가까운 시점에 치러진다. 정권심판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면 자신들이 이긴다고 본다. 선거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다. 선거제도를 지켜야 바른미래당도 흡수한다는 계산이다. 자유한국당은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를 일방적으로 만든 전례가 없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여야 합의가 아니라 주로 독재, 혁명, 쿠데타에 의해 바뀌었다. 불행한 역사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발췌 개헌’으로 도입된 양원제는 1960년 4·19 혁명으로 처음 실시됐다. 5·16 쿠데타로 설치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지연·혈연의 폐를 방지하기 위하여 소선거구에 다수대표제와 전국선거구에 비례대표제를 병용”하는 국회의원 선거법을 제정했다. 비례대표제를 처음 도입한 것이다. 1972년 유신 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거한 의원’(유정회)을 두도록 했다. 지역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로 146명을 뽑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73명을 뽑았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헌법에 비례대표제를 명시했다. 1981년 1월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중선거구제와 전국구 제도를 병행하는 국회의원 선거법을 제정했다. 여야 합의로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뀐 것은 1988년이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1노 3김’ 총재들의 시대였다. 총재들은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공천을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소선거구제 합의가 이뤄진 배경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국회의원들도 있었지만, 총재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공천권을 가진 제왕적 총재였기 때문이다. 그 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2004년 17대 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 의원을 따로 뽑는 1인2표제를 도입한 것이 유일한 변화다. 그동안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선거구제로 변경하자는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총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당의 리더십이 붕괴하면서 선거제도 변경을 협상할 수 있는 주체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실은 선거법 개정만 어려워진 것이 아니었다. 정당 리더십 공백으로 정치 협상이 불가능해졌다. 국회는 ‘동물국회’로 전락했다. 원혜영, 김세연 의원 등이 머리를 맞대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다수 정파에 의한 ‘날치기’를 불가능하게 하면서도 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이라는 숨통을 열어 놓았다. 소수 정파의 맹목적 반대로 입법이 마비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장치다. 4개 정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몇가지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입법 절차다. 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 뒤에는 어떻게 될까? 자유한국당 의원직 총사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의원직 사퇴에는 세비 반납, 후원계좌 폐쇄, 보좌진 해임이 따라야 한다. 두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냉각기를 거친 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해 협상에 나서는 경우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희망하는 시나리오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도 여야 영수회담이나 대표 회담 등으로 정국 정상화를 시도할 것이다. 둘째,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길로 가면 국회선진화법이 정한 330일을 다 채운 뒤 2020년 2월 필리버스터를 거쳐 선거법 개정안과 개혁 법안이 차례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는 쉽지 않다. 선거법 개정안이 부결되면 개혁 법안도 부결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거법에 별표로 붙어 있는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구역표’다.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지역구가 사라지는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선거를 제날짜에 치르지 못하게 된다. 괜찮을까?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 대한민국은 무슨 일이든 벌어지는 나라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도 헌정 질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개혁 입법도 중요하다.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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