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팀장 기자가 팀장인 사회정책팀은 보건복지, 교육, 노동, 여성, 환경 등 분야를 담당하는데, ‘다이내믹 코리아’의 정책과 사건을 전하느라 바람 잘 날 없다. 하루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하루는 미세먼지, 하루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하루는 인공혈관, 하루는 성차별, 이렇게 순서대로 돌아오지도 않고 때로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의제들을 감당하느라 담당 기자들은 분주하다. 기자들이 보내온 기사들을 정리하면서 ‘하루하루 마감하는 기적’을 체험한다. 아찔한 속도감 속에 몇개월을 보내면서 여전히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면모를 월급 받으면서 체험하는 영광을 누리는데, 어질어질 멀미 속에서도 스멀스멀 떠오르는 의문은 ‘대표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최초로 나온 ‘탄력근로제’ 합의문에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로 사용자의 여러 의무를 면하게 돼 있다. 탄력근로제로 생기는 임금 손실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의무도, ‘근무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할 의무도 합의만 하면 면제가 가능하다. 정작 ‘근로자 대표’에 대한 법적 정의는 거의 없거나 실효성이 약해 ‘사장님 마음대로’ 되기가 십상이다. 한국에서 노조가 없는 일터는 90%에 이른다. 노조 없는 일터에 노사협의회 대표가 있어도 경영진 제안을 거부하긴 어렵다. 변화된 사회를 반영하기 위해 경사노위는 여성·비정규·청년 대표를 노동자 위원으로 선임했다. 노동조합 대표만 참여하던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경사노위의 첫 합의인 ‘탄력근로제 확대’는 여성·비정규·청년 대표의 본회의 불참으로 의결이 불가능해졌다. 대변되지 않던 이들을 대표하게 하겠다는 대의는 시험에 들었다. 계층별 대표들은 탄력근로제 합의 내용은 물론 권한의 한계를 지적했다. 운영위원회와 의제개발·조정위원회 등에 참여를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비판한 것이다. 여성·비정규·청년 대표를 “보조축”이라고 표현한 경사노위 관계자의 말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무의식의 단면을 드러냈다. 사회적 대화가 공회전하는 현실을 보면서 ‘20세기의 방식으로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떨치기 어렵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대타협이라는 모델이 20세기 유럽에서 ‘예외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강력하게 조직돼 있지도 않고, 노동조합을 지지할 뿐 아니라 합의 이행을 보장할 정당이 조직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는 가능한가. 한편엔 대표를 자임하는 조직들이 있다. 지난 세기에 조직된 집단들이 여론을 휘두르고 과대표된다. 예컨대 직능집단이자 이익집단으로 형성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같은 곳이다. 과대표된 집단들은 효능감에 취해 과도한 요구를 하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정치하는엄마들’ 같은 시민단체가 열심히 맞서지만, 시민사회를 휘둘러온 집단의 반대쪽은 충분히 조직되지 않았다. 전통적 조직의 과도한 주인의식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낸다. 일부 개신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함으로써 전통과 윤리의 수호자를 자임한다. 아무도 위임하지 않았는데 주류를 자처한다. 한편에선 과대표화가 비판의 도구로 이용된다. 여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메갈리아’ 혹은 ‘워마드’ 일부의 과격성을 과잉 상징화하며 ‘페미’들을 싸잡아 몰아가는 ‘쉬운’ 비판이 대표적이다. 과거의 지배는 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대표는 등장하지 않은 지금, 세상을 보고 참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상념만 스친다.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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