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켈파트프레스’ 대표 제주어에 괸당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 대한 정의가 다채롭다. 로맨틱하기로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있고, 합당하기로는 ‘돌보는 무리’라는 뜻의 ‘권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대체로 혈족 혹은 가깝고 먼 친척을 두루 일컫는데, 그 먼 친척의 범위에 지연과 학연, 친분까지 아울러 포함된다. 동네 어른이나 부모님의 친구를 모두 삼춘(삼촌)으로 부르게 되는 이유다. 사실 짧은 문장으로 정의 내리긴 어려운 괸당 같은 지역적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경험을 하거나 구두로 전해 듣는 간접 체험을 해보는 게 필요하다. 사전에 없는 신조어를 이해하려고 소셜딕셔너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그 신조어를 사용하는 무리들 속에서 오가는 대화를 한번만 들어보면 용례가 정확히 파악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모든 사전은 단어의 뜻을 설명한 뒤에 이해를 돕기 위해 꼭 예문을 넣어주지 않던가. 괸당과 관련한 예문 중에 가장 유명한 문장은 선거철마다 도는 “이당 저당보다 괸당이 최고다”라는 말이다. 라임을 좀 아는 누군가가 처음 시작해 좁은 섬 안에서 “야당 여당보다 괸당” 등의 변용을 거치며 사용된다. 괸당 위주의 선거운동이 투표에도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같은 동네 출신이나 학교를 나온 후보자가 있다면 후보자의 됨됨이나 공약을 살피기보단 일단 찍어주고 본다. 투표자가 후보자와 괸당이 아니라면 내 괸당이 괸당으로 얽힌 후보자를 다시 밀어주는 식이 된다. 이는 사실 영남 지역에서 정치에 지역감정을 이용하기 위해 쓰는 표현인 “우리가 남이가”의 제주 버전이기도 하다. 정치를 떠난 사회생활에서 괸당은 다음과 같이 적용된다. 공식적인 미팅 자리나 비공식적인 사교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명함을 주고받는 딱딱함은 순간뿐, 명함 속 이름을 들여다보며 우선 제주 출신이냐고 묻는다. 맞는다고 대답하면 현재 거주지,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본적, 태어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심문이 당연하다는 듯 이어진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는 대체로 제주 출신의 연장자인 경우가 많고, 이 심문 과정에서 뭐라도 공통점을 찾아내 어떻게든 ‘괸당이네’라는 단어로 유대를 만들어내야 안심한다. 그다음으로는 괸당이니까 말을 놓는다. 말을 편하게 하겠다는 말은 곧 일을 편하게 하겠다는 뜻이 된다. 이때부터는 한명의 사회인으로 전문가로서 대우받으며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이제부터 이 일은 일종의 괸당(패밀리) 비즈니스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괸당끼리 잘해보자는 식이 된다. 괸당의 다른 말은 발전 없이 정체되어 ‘고인 당’일지도 모르겠다. 농사철이나 거친 바닷일을 할 때 일손을 돕는 수놀음에서 괸당 문화가 강화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이웃의 일, 내 일 구분 없이 도우며 살았던 데서 괸당 문화의 원류를 찾는 시각이다. 4·3사건처럼 슬픈 역사에서 괸당 문화를 읽는 이들도 있다. 외지인들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면서 지인들과의 유대가 공고해졌다는 논리다. 괸당은 검증된 친구의 개념과도 같아서, 괸당이라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괸당 문화가 제주 특유의 문화는 맞는 걸까? 사실 괸당 문화는 아직 도시화, 현대화, 개인화가 덜 된 공동체 문화의 잔재로도 볼 수 있다. 괸당은 다른 말로 파벌주의, 가족 이기주의, 좀 넓게는 지역 이기주의가 되고, 더 확장되면 민족주의가 된다. 이걸 긍정적인 단어로 바꿔보자면 가족애, 향토애 등으로 꾸며질 수도 있다. 어떤 문화든 아름답게 지켜질 만한 가치가 있도록 활용된다면 지켜져야 한다. 괸당 문화의 부정적인 면은 줄여나가고, 긍정적인 면을 발전시켜 나가며 제주의 특색으로 만들어갈 노력을 해봐도 좋겠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 서로 협력하며 성장하는 기업형을 만드는 데 수놀음 문화에 기초한 괸당 문화의 특성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는 문화 속 사람들의 몫이다. 문화의 정의는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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