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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좋은 모습”에 갇힌 케이팝 / 미묘

등록 2019-03-22 16:12수정 2019-03-23 12:57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승리가 공연 예정이었던 장소에 국외 팬들이 모여 승리를 응원했다고 한다. 사건이 심화되면서 점차 기류는 변하고 있지만, 국외 팬 중에는 억울한 누명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이들도 많아 보인다. 그런 국외 팬에 대한 국내의 혐오 발언도 등장한다. 국내외의 인식이 다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남성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한국 사회라는 걸 체감하느냐 아니냐다.

기획사의 관리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어린 나이부터 연예계에 입문해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약물 강간이나 타인의 사생활 유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멈추지 않고 드러나는 단톡방 여학우 성희롱이나 강간 약물 판매, 갖은 방식의 2차 가해 등은 그렇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 성차별, 성적 대상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은 한류 콘텐츠에도 담겨 있다. 젠더 불균형이 두드러진 문화권에서 한류가 더 큰 친화력을 발휘해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그리고 한류 산업은 많은 경우 기획자가 콘텐츠 창작의 주체다. 연예인을 책임지는 윗사람이라고 사회 전반과 확연히 다른 감수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이돌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인성을 가르칠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예계에서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는 말이 인사말로 흔히 통용되지만 이는 나쁜 모습을 감추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승리 단톡방에 연루됐다는 말이 나오자 일단 부인하고 본 몇몇 주체들이다. 연예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덮고 넘어가는 것이 관례이자 원칙이었다. 그런 세계관에서는 인성 교육 같은 키워드가 유효할 수도 있다. 사건이 벌어지면 이를 덮는 수고가 발생한다. 그러니 보이는 곳에서 ‘사고’만 안 치면 되고, 그런 교육은 권력관계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리는 기술로서의 인성이다.

변화의 시점이다. 성차별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차별적 콘텐츠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고 믿을 때에나 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깨졌고, 기존과 같은 한류 콘텐츠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대중은 늘어날 것이다. 이번 스캔들이 케이팝에 찬물을 끼얹었다면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인성론은 무력하다. 무대에 서는 연예인의 인성이 탁월하다고 해서 작품마저 자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확보하진 않는다.

지금 우리가 연예계에 요구해야 할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라 좋은 주체가 되는 일이다. 시장주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연예계가 이런 요구를 듣게 하는 방법은 자명하다. 그중에는 비위를 저지른 연예인이나 기획사를 비판하는 것도 포함되기는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연예계 욕은 그 자체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쉽고 즐거우며, 현실을 잊게 한다. 우리 사회의 강간문화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연예인과 창작자들의 존재도 잊힌다. 또한 다른 목소리를 내놓기 위해 애써온 이들의 존재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대중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케이팝 산업에 좀더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성차별적 콘텐츠를 반성하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들은 있다. 할 말은 최대한 하려 발버둥 쳐온 이들도 있다. 때론 여론이나 흥행의 위험 요소를 피해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잘 조명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언론이나 평론가의 책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중이 이들을 발견하고 지지할 때 산업과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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