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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나다르크’에게 필요한 것 / 이지은

등록 2019-04-07 18:17수정 2019-04-07 20:03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발언하고있다.  나 원내대표는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란 표현은 외신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발언하고있다. 나 원내대표는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란 표현은 외신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잘못보다 잘못에 대한 해명이 더 비판을 사는 걸 자주 본다. 잘못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상황을 모면하려고 변명하기 때문이다. 2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음에도 “검증 과정에서는 문제없었다”는 청와대가 그렇다. 후보자가 말을 안 해서 몰랐다는 해명은 무능함을, 다주택자를 부동산정책 주무 장관에 지명하고도 괜찮을 줄 알았다는 해명은 정무 감각 수준을 보여준다. 대형 산불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국가위기대응 책임자를 붙잡아 둔 제1야당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회의에 집중하느라 몰랐다”거나 “여당이 심각성을 얘기 안 해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는 해명은 야당의 존재를 스스로 깎아내린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성찰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제 부족함을 모르니 더 나아지기 어렵다. 제 잘못을 모르니 다른 조언이나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무능하고 오만해지면 실수가 잇따르고, 그때부터는 내리막길 가기 십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 내놓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뒤 최저치(41%)를 기록했다. 40%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찰하는 데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제1야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경우는 어떨까. 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소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순진하게 느껴질 만큼 노골적인 자세와 표정이었다. 3수 끝에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던 그는 “김정은 수석대변인” 연설 하나로 ‘보수 진영의 나다르크’로 떠올랐다.

이는 그가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될지 모르니 돌아보라는 경계 신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다르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한때 ‘온건중립 성향’ ‘비박’으로 분류되던 그를 계속 오른쪽으로 달려가게 했다면, ‘나다르크’가 됐다는 성공의 기쁨이 그를 더 오른쪽으로 밀어붙일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다르크’의 입에선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 “‘독재 선거제’를 날치기한다면 흑사병 패스트트랙” “공수처는 대한민국판 게슈타포” 등과 같은 막말과 어지럽고 독한 말들이 계속되고 있다.

말을 거칠게 한다고 리더십이 강해지는 게 아니다. 최근 서른아홉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보여준 리더십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아던 총리는 모스크 테러 현장을 찾아 무슬림 희생자들에 대해 “그들이 우리다”라고 말하며 이민자 사회를 보듬었다. 히잡을 쓰고 무슬림 공동체를 위로하는 사진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 널리 퍼졌다. 의회에선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아랍어로 인사했다. 한편으론 테러범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악명을 얻으려는 테러범의 의도를 막기 위해서다. 증오가 아닌 공감의 말로, 또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뉴질랜드 얘기를 한 김에, 나 원내대표가 이 나라의 선거제도도 들여다봤으면 한다.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당론과 똑같이 ‘비례대표 없이 지역구 1위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운영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강고한 양당 체제에서 벌어진 복지 축소, 저소득층의 임금 저하와 양극화, 공공부문 민영화 등에 지친 국민들 사이에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국민투표를 통해 1996년부터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모든 표’를 중시하는 의회를 구성하고, 정책 협상과 합의가 강조되는 정당정치를 통해 정치인들은 리더십을 키운다. 아던 총리는 스물여덟살에 처음 비례대표 의원이 됐고, 두 번의 비례대표를 더 거쳐 지역구 의원에 뽑힌 뒤 당 대표와 총리가 됐다. 17대 총선 때 처음 도입된 정당투표 비례대표제를 통해 ‘한나라당 비례대표 11번’으로 국회에 들어온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비례대표 폐지’ 주장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다른 나라 얘기라 납득하기 어렵다면,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강원도 화재 현장에서 쓴 행정안전부 장관 이임사를 일독해보라. 리더십에 필요한 것은 입이 아니다.

이지은
정치사회에디터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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