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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에로스의 불가능성 / 이라영

등록 2019-04-10 17:02수정 2019-04-10 19:12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중소도시의 번화가 한편에서 ‘고정 아가씨 항시 대기’ ‘대형 룸 완비’라고 쓰인 유흥업소들을 보았다. 야릇한 그림과 함께 업소의 이름들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큐비즘’. 버닝썬처럼 호텔에 자리한 대형 클럽에 비하면 ‘소박하고 서민적인’ 유흥의 장소다. 이러한 ‘문화’는 에로티시즘과 무관하다. 건강한 긴장감이 감도는 성적인 마주침은 사라지고 성적인 지배로 가득하다.

2017년 개봉했던 영화 <범죄도시>에서 불편했던 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한국 국적의 남성과 재중 동포(혹은 재한 중국인) 남성 간의 대결 구도다. 전자는 어느 정도 억울하게 그려진다면, 후자는 악질적인 존재다. 영화에서 황 사장 일당보다 장첸 일당이 훨씬 죄질이 좋지 않은 악역을 담당한다.

황 사장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전라도 사투리 구사자는 대중문화 속에서 주로 폭력적으로 그려졌다. 소위 조폭으로 재현되는 인물들이 호남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지역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이후 이러한 재현 방식은 차츰 줄어들었다. 오늘날은 그 자리를 재중 동포 남성에게 맡긴다.

지난 영화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두번째 문제점인 유흥업소와 경찰의 유착관계 때문이다. <범죄도시>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황 사장과 하얼빈의 장첸이 대립할 때 황 사장은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형사는 그에게 방검복까지 준다. 남한 사회의 외부자를 상징하는 전라도 사투리는 ‘조선족 말투’ 앞에서만 내부자의 언어가 된다.

‘진지충’의 입장에서 보자면, 흥행에 성공한 이 ‘재미있는’ 영화 속에 웃을 수 없는 웃음 코드가 곳곳에 있다. 황 사장은 업소에 새로 온 여성들을 형사에게 인사시킨다. 이 장면은 마동석 특유의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재치있는 연기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룸살롱에서 대낮에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술접대를 받는 이 장면도 역시 발랄하게 지나간다.

‘접대’하는 여성들 중에는 백인 여성도 있다. 이 여성이 한국에 들어와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되는 경위를 아름답게 상상하긴 힘들다. 국경을 넘나들며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고 매매되는 많은 문제들은 그저 한국어로 욕을 찰지게 하는 장면을 통해 웃음으로 희석될 뿐이다. 이 영화는 적당히 선을 지키기 때문에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장첸 일당이 사라진 가리봉은 마치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인다. 룸살롱과 경찰의 유착관계는 그야말로 훈훈하게 그려질 뿐이다. 이들의 유착은 다른 계층 남성 간에 형성된 인간적인 형제애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양아치든, 깡패든, 뭐라 부르든 폭력을 생산하는 주체와 이 폭력을 제압하는 정의의 주체, 경찰이 보여주는 남성연대는 한국 영화에서 오래된 소재다. 실은 다들 암암리에 알고 있던 사실. 범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유흥업소와 경찰 간의 그 유착관계가 현실 속에서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버닝썬’에만 머무르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을 마무리한 형사들은 마지막 장면에 밥 먹으러 가면서 ‘룸’이 아니어서 아쉬워한다. 마치 성과급을 받듯이 큰 사건을 해결한 형사들은 ‘룸’을 기대한다. 실제로 매우 평범한 남성들이 성매수 ‘문화’에 참여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양진호나 일부 연예인, 김학의나 조선일보 방 사장 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슬림 난민과 성폭력을 연결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실은 권력과 은밀하게 결탁한 폭력이 우리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홍준표나 탁현민을 보라.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얼굴이 바로 지배하는 성의 정체다. 여성 비하와 폭력적 행위를 책으로 남겨도 제도권에서 승승장구한다.

페미니즘이 성적 긴장감을 소거하는 사회로 이끌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성적 긴장감을 위협하는 건 페미니즘이 아니다. ‘지배하는 성’이 되지 않으면 놀지도 못하는 권력 중독이 문제다. 룸살롱 공화국에서 에로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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