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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어버이날의 오염 / 안영춘

등록 2019-05-08 16:00수정 2019-05-08 19:08

어버이날이 애초 ‘어머니날’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머니날은 1956년 국무회의에서 지정됐고, 1973년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한쪽에만 효도해서 되겠느냐는 아버지들의 ‘투정’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남성들의 ‘역차별’ 시정 요구쯤 될 성싶다. 여기에 어머니날의 기원이 페미니즘과 닿아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2019년을 사는 남성으로서 다소 민망한 노릇이다.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1868년 앤 리브스 자비스라는 여성이 조직한 ‘어머니 우애의 날’이 효시로 꼽힌다. 자비스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난 그해 양쪽 참전 군인들을 초청해 동병상련과 화해를 도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1870년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줄리아 워드 하우라는 여성이 ‘어머니날 선언’을 발표한 것을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우는 어머니들이 결집해 세계 평화를 요구하자고 역설했다. 누가 효시든, 어머니날은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날이었다. 페미니즘 성격도 짙었다.

어머니날이 공식 기념일이 된 데는 자비스의 딸 애나 자비스의 역할이 컸다. 딸은 1905년 어머니가 작고하자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공휴일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정치권 로비를 벌여 ‘어머니날국제협회’를 설립했고, 마침내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그러나 어렵게 제정된 어머니날을 점령한 건 자본의 마케팅이었다. 화해와 평화를 장려하겠다는 자비스의 구상과 달리 백화점과 식당, 선물가게는 돈만 좇았다. 카네이션을 파는 꽃가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자비스는 어머니날 폐지 청원까지 했지만, 결국 자본과 시장이 영원한 승자임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효도 마케팅이 성행하지만, 몇해 전부터는 낯선 풍경 하나가 추가됐다. ‘어버이’를 자칭하는 이들이 365일 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무시무시한 적대를 과시한다. 확성기에서는 군가가 울려 퍼진다. ‘어머니날 선언’을 발표한 하우가 남북전쟁 당시 북군 군가인 ‘공화국 전투 찬가’의 작사가라는 걸 상기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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