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패스트트랙으로 인한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해 개헌 카드를 다시 꺼낼 때가 됐다. 개헌 논의 빗장을 풀어 정치를 살려야 한다. 양보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을 기대한다.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인영 의원이 당선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법 패스트트랙으로 촉발된 국회 파행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완강하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일대일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몸값을 높이려는 계산일 것이다.
이번 주에는 충청지역을 돌며 ‘민생·투쟁 대장정’을 이어간다. 13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당 대표들이 만나는 ‘초월회’에도 불참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국회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민경욱 대변인은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더불어민주당에 패스트트랙 철회와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완력을 행사해 국회선진화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고소·고발을 취소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꽉 막힌 정국은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국회가 안 열리면 정치가 죽는다. 정치가 죽으면 여당에 이익일까? 야당에 이익일까? 양쪽 다 손해다.
국회를 정상화하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묘수가 없을까? 있다.
모두가 알고 있으니 묘수도 아니다. 선거법 재협상과 개헌 논의를 지금 즉시 재개하는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4월10일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사에서 권력구조 개헌안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국회에서 총리를 복수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으로, 2020년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쳐, 다음 정권에서 시작하는 개헌에 대한 일괄타결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문희상 개헌안은 대통령과 국회의 협력을 촉진하는 합리적 방안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제도와 잘 어울린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3일 초월회에서 문희상 개헌안을 상기시키며 정치 복원을 위해 선거법 개정과 권력구조 개헌을 같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지난 9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같은 내용의 제안을 했다.
“개헌 논의를 병행해 자유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야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개헌하면 선거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민주당이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선거법 개혁과 개헌 논의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상의하겠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2017년 국회 개헌특위에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간사로 함께 일했다. 김관영 의원은 1 소위원장, 이인영 의원은 2 소위원장이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도 김관영 원내대표와 같은 의견을 냈다. 지난 9일 <한겨레티브이> 인터뷰에서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에 대해 마음을 열면 우리도 권력구조 개편에 나설 수 있다. 권력구조의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가 안 싸우고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다. 정개특위를 연장하거나 정개특위에 이어서 헌정특위 형태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개헌과 선거법은 처음부터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지난해 12월15일 5당 원내대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문 6항은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였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회 정개특위 자문위원회도 1월9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국회의원 증원과 함께 “개헌 논의 본격화”를 제안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개헌 논의 재개에 조심스러운 편이다. 김종민 의원은 “우리 당 입장은 개헌 논의에 상당히 민감하긴 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왜 그럴까?
문재인 대통령의 ‘노기’가 풀렸는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은 지난해 5월24일 국회에서 투표 불성립으로 부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날 페이스북에 “많은 정치인이 개헌을 말하고 약속했지만, 진심으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분은 적었다. 이번 국회에서 개헌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기대를 내려놓는다. 언젠가 국민들께서 개헌 동력을 다시 모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뒤 지금까지 여권에서는 ‘개헌’이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있다. 지난 9일 <케이비에스> 회견에서도 개헌에 대한 질문이나 답변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패스트트랙으로 인한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해 개헌 카드를 다시 꺼낼 때가 됐다. 개헌 논의 빗장을 풀어 정치를 살려야 한다. 양보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