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반대에도 화장실 작은 창으로 도망쳐서 깃발을 높이 들다 쓰러졌을 때 너는 겨우 17살이었다. 피로 물든 그곳에서 살아남은 나는 36살이 됐다. 너의 망령을 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죄이다. 네게 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
2017년 투옥 중 사망한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운동 2년을 맞은 1991년에 쓴 추모시 ‘17살에게’의 일부다. 1989년 6월4일 새벽 중국 계엄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연좌하던 학생·노동자·시민을 짓밟았다. 중국 정부는 대학생 36명을 포함해 200여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최소 2천명은 숨진 것으로 반체제 인사들은 보고 있다. 류샤오보의 시는 1980년 군부에 짓밟힌 광주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 광주, 1989년 베이징은 살아남은 게 부끄러운 시대였다.
당시 학생 지도부였던 왕단은 ‘6·4’ 이후 돌아가지 못하는 이로 남아 있다. 두 차례 투옥 뒤 미국으로 추방돼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왕단은 당시 덩샤오핑이 “20만명이 죽는다 해도 국면을 통제하고 20년의 안녕을 쟁취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인민일보>가 학생운동이 공산당을 부정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왜곡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고 회고했다.(왕단, <왕단의 중국현대사>)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학자였던 류샤오보는 귀국해 광장에 합류한 뒤 폭력 진압에 반대하는 단식을 벌였다. 류샤오보는 2008년엔 일당독재 종식 등을 요구하는 ‘08헌장’을 주도해 네번째로 투옥됐고 201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류샤오보는 2017년 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대중에게 강연할 기회가 딱 두번 주어졌는데 1991년과 2009년 재판 최후진술 때였다.
중국 공산당은 6·4 이후의 안정이 덩샤오핑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엔 고속성장을 계속하며 ‘상하이가 뉴욕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감마저 내보였다.
이런 외견상의 ‘대국 굴기’가 중국을 일류 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걸까? 왕단과 류샤오보 같은 이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진정한 ‘굴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