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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김제동 너머 / 손아람

등록 2019-06-12 16:29수정 2019-06-12 19:07

손아람
작가

“결식아동 급식을 3875번 먹일 수 있고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을 한달간 12명이나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김제동의 강연료를 두고 자유한국당 대전시당은 성명을 냈다. <미디어오늘>은 반박했다. “몸값은 그가 책정하지 않는다. 시세가 있는데 적게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양쪽의 논변에 동원된 경제 논리는 정확히 상대방이 내세워왔던 정치적 입장에 입각했다. 자본주의 역설의 정점으로 기억될 사건이다.

반씩 맞고 반씩 틀렸다. 유명인의 강연료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제동에 한정한다면 엉뚱한 비판이다. 이 논란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김제동만 문제 삼는다면, 대전시 재정투명성이 지나쳤던 게 문제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강연자의 명성에 따라 강연료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시장 가격이라는 주장도 틀렸다. 시세대로 강연료를 받는 유명인은 단 한명도 없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경제학자들이 먼저 유료 강연의 난립을 예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장은 어디에도 없다. 스타 강사의 무료 인문학 강연은 넘쳐나지만, 아이돌 콘서트처럼 수강료를 몇만원씩 걷는다면 좌석은 텅 빈다. 상상이 아닌 경험으로 안다.

몇년 전 유료 강연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의 고액과 함께.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강연일에 담당자는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수강자가 적어서 죄송하네요.” 강연장 문을 열었을 때 의자는 ‘빽빽하게’ 비어 있었다. 단 한 자리만 빼고. 첫 인사로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준비한 강연계획을 즉시 수정하고 나는 연단을 내려가 수강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두시간 동안 대화식으로 진행한 과외 강연에서 나의 첫 질문은 여기 왜 왔냐였다. 그는 강연자 명단에서 아는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수강신청했다고 대답했다. 내 페이스북 친구라는 것이었다. 적자를 감수한 이 유료 강연은 모기업 브랜드 홍보를 위해 기획됐다.

나에게는 시급 몇만원짜리 강의를 지키려고 싸우는, 전문 학위를 소지한 무명의 친구들이 있다. 반면 고정 수입이 전혀 없어 글보다 강연에 생계를 의존하는 유명한 작가 친구들도 있다. 어떤 작가는 책 판매 수입보다 책과 관련된 강연 1회의 수입이 더 컸다고 고백했다. 양심이 있는 문화예술인은 공익적 강연에는 무보수나 교통비만 받기도 하지만, 변명은 되지 않는다. 그 정도는 김제동도 하고 있다. 고액 강연을 거절하면 어떨까? 예산은 정해져 있다. 한 사람이 거절하면 강연료가 부족했다고 여긴 주최 쪽은 섭외 비용을 높여 다른 유명인에게 접근한다. 지자체나 지방대학, 지방 소재 기업일수록 유명인 초빙에 목맨다. 왜?

주최 쪽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믿기 때문이다. 유명인 구경에 갈증을 느끼는 구성원들의 충성과 결속을 다지는 데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정책 연구를 발주하고, 지방의회를 설득하고, 업적 홍보를 위해 받아쓰는 기자조차 읽지 않을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경제적인 방식이라고 여긴다. 문화적 결핍을 가진 수백수천명의 잠재적 유권자를 두시간 가까이 자발적으로 붙들어놓고 귀 기울이게 만들 수단은 강연 외에는 없다. 그래서 도성 바깥으로 도통 나올 생각이 없는 문화예술인들을 유혹하기 위해 거액이 미끼로 쓰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두가지다.

첫째, 지방의 문화 기반은 어떤가? 문화예술을 비롯한 많은 인적 자원이 수도권에 과집중되어 있다. 지방은 문화예술인의 휴가처, 저렴한 임시 거주지, 고립된 작업공간 이상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둘째, 강연 청중에게 인문학과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돈을 지급할 정도의 가치는 없지만 활자 앞의 지루한 시간을 생략하고도 지성적 여가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강단에 선 유명인과 찍은 셀카 한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충분하다.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김제동은 필요 없다. 김제동 너머 진짜 논쟁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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