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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청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 김선기

등록 2019-06-17 17:13수정 2019-06-17 19:02

2016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벽면에 붙은 청년 관련 대형펼침막. 최근 서울시의 ‘조건 없는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이 논란이 되면서, 2016년에 이어 청년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6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벽면에 붙은 청년 관련 대형펼침막. 최근 서울시의 ‘조건 없는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이 논란이 되면서, 2016년에 이어 청년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청년’ ‘2030’ 따위의 언어들은 최근 한국의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주요 이슈로 등장해왔다. 정치권에서는 너도나도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언어를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 이런 방식의 ‘청년팔이’가 계속되어온 10여년 동안 구체적으로 나아진 부분이 있는지는 확신하기가 힘들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청년정책을 출범 뒤 2년간 추진해왔다고는 하는데, 청년들은 새 정부의 청년정책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감각하기 어렵다. 국회는 청년기본법 제정을 아직도 처리하지 않고 있으며, 종합적 청년정책 추진을 위한 정부 내 조직 개편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20대 남성 코호트의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뒤로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청년’을 더 챙기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희극적이다.

그런데도 당정청 청년미래연석회의 등이 꾸려지는 최근의 흐름에 일말의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가 어떻든 최근의 국면은 ‘청년’을 이해하는 깊이가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증명해야 할 시험대에 문재인 정부를 위치시키고 있다. 새로운 청년정책은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수많은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실패를 반복해온 것은 근본적으로 ‘청년’에 대한 기존의 관점이 지닌 한계 탓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가 지난 2년간은 기존 청년정책의 양과 폭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3년은 청년정책의 목표와 철학을 완전히 달리하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청년은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주체다. 따라서 정책은 청년의 특정한 상태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함으로써, 청년을 시혜의 대상으로 만드는 관성을 넘어서야 한다. 그간 고용대책 위주로 구성되어온 청년정책은 정책 대상이 되는 청년들을 ‘아직’ 취업하지 ‘못한’ 상태로 규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청년들을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존재로 격하시켜왔다. 청년들을 취업시키려는 정책의 밑바탕에는 동시에 이들의 취업률 상승이 조혼율과 조출생률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끼워져 있는데, 이는 취·창업과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 청년들이 마주하는 규범성을 강화해왔다.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청년들은 정책 대상에 해당하지 않게 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배제를 겪어왔다. 더불어 ‘취업’과 상대적으로 덜 관련된 청년들, 예컨대 전업주부나 비전형 노동자, 대학원생, 비영리 활동가, 문화예술인 등은 같은 연령대에 포함되는데도 국가가 호명하는 청년에서는 빠져 있었다.

청년은 아이가 아니다. 청년은 자립이 가능한 성인이며, 청년정책이 그러한 전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캥거루족이라는 현상을 독립적이기보다는 의존적이려고 하는 청년들의 문제로 다룬다. 그러나 오히려 청년 자녀를 과하게 보호하거나 세대 간 자원 이전을 통한 재생산 전략을 고수하는 부모들, 청년을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존재로 간주하고 이들을 국가 발전의 도구로 인식하는 가부장적 국가에서 문제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상당히 늦은 축에 속하는 한국 청년들의 사회적 독립 시기를 앞당기는 데 청년정책이 관여해야 한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로 청년을 보는 인식전환 없이는 청년정책 또한 가족주의의 바탕에서 불평등이 세대를 건너 이전되고 심화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공모하게 될 수 있다.

청년은 미래가 아니다. 청년은 현재다. 청년이 미래라는 닳고 닳은 레토릭이 아직도 힘을 지닌다는 사실은, 왜 한국 사회의 세대교체가 비정상적으로 더뎌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청년이 미래라고 한다면, 청년이 그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현재의 존재이기 때문이지, 한국 사회의 방향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이들에게는 언제인지 모를 미래에야 주어지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청년이 스스로 처한, 또 스스로 해결 의지를 가진 다양한 한국 사회 공동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치와 자립, 혁신적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와 권한을 과감히 이양해야 할 것이다.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청년팔이 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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