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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연예인 상처’로 조회수 장사는 ‘그만’

등록 2019-06-30 18:28수정 2019-07-18 16:53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송혜교-송중기’의 이혼 소식이 전해진 날 종일 충격에 휩싸였다. 예쁘게 잘 살았으면 했던 부부가 헤어져서? 물론, 그래서 놀란 것도 있지만,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에 충격파가 더 컸다.

방송연예를 담당하면서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부고 기사와 사생활 기사를 쓸 때다. 누군가의 인생이 내 손으로 정리된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을 동반한다. 단순 나열식이 아니라 ‘가시는 길’을 잘 담아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평소 교류가 없던 이라면, 가족·지인에게 사연을 들어야 한다.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추억담을 펼쳐내 달라고 강요하는 건 때론 잔인할 때가 있다. 그래서 부고 기사를 쓸 때면 전화기를 들고 여러 번 망설인다.

그 이상으로 괴로운 게 당사자에게 상처가 됐을 사생활 기사다. 특히 이혼. 결혼 소식이야 사랑만 넘치니 그렇다 치더라도 끝난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부부 사이는 둘만 아는 거고,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다 밝힐 의무도 없다. 결혼과 달리 이혼 기사는 안 그래도 힘들었을 그들을 더 아프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고 기사와 이혼 기사에는 ‘단독’을 붙이지 말자”가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다.

그래서 ‘송중기-송혜교’의 이혼을 둘러싼 보도들을 보며 씁쓸했다. ‘우리’는 남의 아픔을 두고 ‘클릭’ 장사를 했다. 이틀간 포털에 쏟아진 기사만 3000개가 넘는다. 이혼 사유가 뭘까를 궁금해하는 정도를 넘어, 지인의 입을 빌려 갖가지 ‘단독’ 기사를 쏟아냈다. ‘힘들다고 운 적이 있다’는 송혜교 지인의 말은 물론, ‘송중기 측근이 포착한 이상 징후’라며 그의 머리가 엄청 빠졌더라는 것 또한 기사화됐다. 송중기 아버지가 검색어에 등장했고, 강용석은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에서 송혜교가 그간 만났던 남자들이라며 사진까지 합성해 나열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또 이를 받아 썼다. 심지어 ‘지라시’를 기사화하는 곳도 있었다. 공식적인 사실은 송중기가 지난 26일 이혼 조정 신청을 냈다는 것뿐이다.

가십성으로 클릭 수 높이려는 온라인 매체들의 문제라고? 종합일간지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았다. 지면 기사와 별개로 디지털용 기사들을 쏟아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디지털용으로 여러 건의 기사를 억지로 만들어내야 했다. 일간지까지 이런 가십성 기사로 ‘클릭 장사’에 뛰어드나 싶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 금이 간 이미지를 사용한 곳도 있다.

혹자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니 뭐라도 써줘야 한다고 말한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톱스타 부부였던 만큼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건 기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한다. 정말 그럴까. 댓글을 찾아보면 ‘남의 가정사에 관심 좀 꺼라’ ‘적당히 좀 하라’는 누리꾼들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선’이라는 게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지인발’ 기사이며, 누구를 위한 ‘단독’일까.

일련의 사태들을 보며 참담했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3년께 연예인 장례식장에서 무분별한 취재가 비난을 받자 사진기자들은 공동취재단을 꾸려 기사마다 영정 사진만 내보내는 식의 합의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스스로 장례식 취재 관행을 바꾼 것이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한 배우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쫓아오는 기자들한테 “너무한 것 아니냐”고 화를 냈을 정도로 당시 장례식 취재 현장은 심각했다. 이후 완벽하게 건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는 울고 있는 이들을 무작정 쫓아가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상처일 수 있는, 이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다룰 때도 우리만의 암묵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관찰 예능 등 연예인이 알아서 사생활을 돈 받고 파는 마당에 그게 뭐가 대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의 아픔을 이용한 조회 수 장사는 삼가야 한다.

남지은

문화팀 기자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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