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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과학기술연차대회의 비극 / 김우재

등록 2019-07-01 18:10수정 2019-07-02 13:50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대한민국 미래, 과학기술에 달렸다”라는 주제로 과학기술연차대회가 열린다. 역시나 현 정부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는 주제들로 가득하다. 4차 산업혁명은 기본이고, 제조업 업그레이드, 미세먼지/플라스틱 포럼, 좋은 일자리와 스타트업 문제까지, 누가 보면 이게 과학기술인의 잔치인지, 국가정책기조 발표회인지 모를 정도다. 이런 구호의 배경에는 경제와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인은 소처럼 일해야 한다는 철학이 녹아 있다. 그 철학은 박정희의 것이다.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언론 보도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 이보다 국민건강에 더 중요한 뉴스가 있다. 최근 웰컴트러스트 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49%만이 백신이 안전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 동아시아인의 68%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국가일수록 백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데, 한국은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이미 안티백신운동이 과학에 무지한 일반인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확산 중이며, 이는 최근 재발 중인 홍역 등 전염병의 원인이다. 백신만 맞아도 안전했을 전염병에, 어린아이들이 희생될 위기인데도, 과학기술연차대회는 이런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미달이고, 대학원이 더 이상 매력적인 경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이 된 지 오래다. 이공계 인재들의 일자리와 복지 문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인재들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며, 이런 비정상적인 처우를 지켜본 대학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진행 중이다. 게다가 대학원에서 교수는 독재자이며, 대학원생 인권은 존중받지 못한다. 대학원에 가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한국 이공계의 인력 수급 문제는 이미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올해 연차대회의 새로운 시도로는 개회식의 ‘과학기술계 총장 포럼’이 있다고 한다. 과기대학의 총장들이 모여 ‘대한민국 미래 10년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포럼을 진행한다는데, 지금 한국 과학기술계 총장들이 한가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할 때인지 되묻고 싶다. 그들이 가장 긴급하게 물어야 할 질문은 “대한민국 이공계 대학원엔 미래가 있는가”이다. 앞으로 10년이면 대학원의 태반이 문을 닫아야 할 시점에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건, 누가 봐도 태평한 일이다.

2019년 설문조사에서 한국 과학기술 정책은 낙제점을 받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급한 정책만을 펼쳐온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현장의 분노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 결과에 의하면, 기초과학을 진흥해야 할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과학기술계 퇴직 공무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조해야 할 관료들이 과학기술인 위에 군림하며 정책을 산으로 가게 만든 대가는 국민 모두가 조만간 치러야 할 빚으로 남을 것이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틀을 짰던 버니바 부시도,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을 이끄는 프랜시스 콜린스도 모두 각자의 학문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고 현장을 경험했던 정책가였다. 과학기술정책을 과학기술인보다 더 잘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력은 없고, 그건 이미 선진국의 사례로 증명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여러개의 중복된 과학기술정책 정부 유관기관을 만들어 행정학과 경영학 전공자들에게 국가 과학기술 플랜을 맡기고 있다. 선진국에서 과학기술정책의 핵심틀을 계획하는 건 민간 전문가인 과학기술인이다. 관료에게서는 그 어떤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계획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유사과학 콘퍼런스를 후원하려다 망신을 당한 과기정통부는 여전히 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가짜 학회와 가짜 학술지로 과학기술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추락 중이다. 과학계에도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희미해진 웃픈 현실, 과학기술에 무지한 관료가 지배하는 한국 과학기술계에서 희망을 찾기 힘든 이유다. 이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과학기술계는 박정희와 관료의 적폐 속에 고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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