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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한 걸음 나아갈 때 / 손아람

등록 2019-07-10 17:41수정 2019-07-10 19:27

손아람
작가

생물지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따르면, 인류가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에는 공통의 조건이 있다. 초식동물이라는 것. 육식동물은 단 한 종도 식용 가축이 되지 못했고, 비식용 가축까지 범위를 넓혀도 육식동물은 개밖에 없다. 잉여 농산물로 사육할 수 있는 초식동물과 달리 한정된 동물 자원을 축내는 육식동물은 사육 효율이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육식동물은 다 자랄 때까지 자기 체중의 10배에 이르는 동물을 먹는다. 개는 인간의 관대한 양보 덕분에 사회적 친족으로 편입된 예외적인 경우고, 그런 투자를 치르면서 키운 개를 먹어버리는 ‘열역학적 낭비’는 훨씬 더 예외적인 현상이다. 육식동물을 키워서 먹는 이득보다 육식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에, 개를 가축으로 길들여 보유한 모든 문화권에는 개를 죽이지 않는 보편적인 금기가 존재했을 수밖에 없다. 영양적인 필요에 따라 개를 먹는 문화권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개를 키우는 대신 사냥했을 것이다. 개 식용이 특수한 ‘상황’이었을 수는 있어도, 전통문화였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나는 개를 먹지 않는다. 아무도 개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함부로 말하는 건 꺼리는 편이다. 개고기 애호가들의 취향을 존중해서는 아니고, 무의미한 논쟁에 언어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육견협회에서 돌린 회보에 적힌 대응 지침 같은 대사를 듣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럼 소도 먹지 마, 닭도 먹지 말고!” 이런 논변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럼 쥐도 먹어봐, 지렁이도 먹어보고!” 같은 반박이 최소한의 수준을 갖춘 논리라고는 여기지 않을 터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박애주의를 편리한 상황에서만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개고기 요리에 바퀴벌레가 듬뿍 나온 상황에서 주방장이 비슷한 논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르니까.

동물권 논의가 박애주의에 기반하기는 해도, 인간이 동물 종마다 느끼는 호오나 심리적 거리는 각각 다르다. 이 심리적 친연성은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고 크게 보면 인류의 사회성이 진화해온 과정의 일부다. 동물권 단체들이 개 식용에 각별하게 민감한 것은 인간의 사회적 친족으로서의 개의 특수한 지위 때문으로 이해되어야지, 박애주의의 모순으로 지적되어서는 안 된다. 개를 먹는 사람도 사실은 알고 있을 터다. 방망이로 개를 때려잡을 때와 모기채로 모기를 때려잡을 때, 인간은 똑같은 만큼의 끔찍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 차이는 본능의 영역에 속한다.

개는 도살하면 안 되지만 소와 닭은 마음껏 도살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동물권 지지자는 없다. 개미조차 밟지 않는다는 불가적 생태주의까지는 요원하지만, 상상력을 동원해 동물 종에 대한 심리적 친연성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들은 채식을 선택한다. 다른 종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희생과 비용을 자발적으로 떠안겠다는 사람들에게 당장 합류하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의 존경심은 간직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에 죄책감이 들게 만든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볼 만하지 않을까? ‘내가 필요 이상으로 먹기 때문에 다른 동물이 필요 이상으로 죽는다’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이 인간의 문제에는 관대한 공감능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동물권 단체가 육식에 반대하는 대신 개고기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은 기술적 대안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지 내적인 논리의 모순을 해소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수십년 뒤가 될지 수세기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육식의 완전한 극복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에는 개와 닭이 다를 게 뭐냐는 논변을 펼치던 사람들이 닭과 시금치가 다를 게 뭐냐는 논변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후퇴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진전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개 식용 금지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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