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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일산은 망할 것인가 / 박경만

등록 2019-07-14 17:52수정 2019-07-15 09:38

박경만
전국2팀 선임기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서울과 일산 사이에 있는 경기도 고양시 창릉동 일대에 3기 새도시를 짓겠다고 발표한 뒤, 일산은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주말마다 도심에서는 3기 새도시 반대 집회가 열리고, 찬반 싸움이 지역 정치권으로 옮겨붙어 고양시의회는 한달 가까이 파행을 겪었다.

3기 새도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새도시 건설로 창릉에 자족시설과 고양선 등 교통 인프라가 확충되면 노후화된 일산에 활력을 불러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일산의 집값 하락과 교통체증, 공동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서 1960~70년대에 일본 도쿄 외곽에 조성된 ‘다마새도시’가 자주 거론된다. 다마새도시는 도쿄의 인구과밀을 억제하기 위해 도쿄에서 20㎞ 이상 떨어진 구릉에 세워진 위성도시로 일산과 분당 등 1기 새도시의 모델이 됐다. 일산보다 20여년 앞선 1971년 입주가 시작된 이 도시는 전철로 도쿄 도심까지 40분대에 출퇴근이 가능하고 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한때 ‘꿈의 도시’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이곳은 조성된 지 50년도 못 돼 빈집이 넘치는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 40만명이던 인구는 현재 반토막이 났고 초등학교도 절반가량 폐교됐다. 상가의 30%가 문을 닫는 등 노후화,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업성이 떨어져 재개발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지바 등 다른 새도시의 상황도 비슷하다. 다마새도시가 몰락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일본 정부가 도심 공동화를 막기 위해 도쿄 도시재생 사업에 나서면서다. 도심을 고밀도로 압축 개발해 주거·상업·업무·문화·교육시설 등을 복합적으로 갖춘 콤팩트시티로 조성하자, 젊은이들이 출퇴근 시간과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도쿄로 떠났다.

다마새도시를 모델로 삼았던 일산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정부와 고양시는 일산이 다마처럼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일산에 방송영상밸리와 테크노밸리, 대형 공연장 등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고, 창릉새도시가 건설되면 고양선 전철과 첨단산업시설이 더해져 도시 가치와 경쟁력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남북평화협력시대가 열리면 일산은 수도권 서북부의 허브 도시로 위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과 주민들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들은 고성장, 인구팽창 시대의 산물인 새도시를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적용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 일산은 1993년 입주 당시 20~30대가 전체 인구의 43%로 젊은 도시였지만 지금은 27%로 줄었고 주연령층이 40~50대로 바뀌었다. 아파트도 노후화되어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3기 새도시가 서울 주택 수요 분산보다는 ‘서울 확장 효과’를 가져와 일산과 서울 외곽 주민들을 흡수할 것이라고 보는 이도 많다.

3기 새도시에 판교보다 큰 테크노밸리를 조성해 자족도시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에는 이미 판교, 광명·시흥, 과천, 마곡, 계양 등 테크노밸리가 넘쳐나고, 경기 북부에만도 4곳의 테크노밸리가 추진 중이다. 입지와 경제규모가 다른데 분당·판교를 생각하고 덤벼들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2기 새도시 건설 때도 자족도시를 내세웠지만 15년이 지나도록 개발이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3기 새도시가 수도권 쏠림 현상을 부채질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도시는 새롭게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다마새도시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금은 어떻게 도시를 가꿀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필요한 때다. 일산은 망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운정, 검단, 양주 등 2기 새도시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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