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대안’ 책임 연구위원·의사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데이터가 미래 산업의 쌀”이라고 했다. 데이터 경제가 한국 경제의 미래 중 하나라는 취지였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해 이른바 ‘데이터 3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도 요청했다. 그러나 건강정보와 유전정보는 쌀이 아니다.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내 몸이 나의 것이듯, 내 건강정보, 유전정보는 나의 것이다. 정부·여당은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려 하고 있다. 이런 큰일을 벌이면서 관련 내용에 대해 제대로 된 국민 의견 수렴 절차도 밟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명정보’의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개정안은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으로 그 목적을 한정하긴 했으나, 그 범위를 매우 폭넓게 정의해 사실상 기업이나 개인의 사익 추구를 위한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도 정보주체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가명화’라는 형태로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한 정보에 한정된 것이고 가명정보 재식별 처리를 금지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정보·유전정보만큼은 이런 조치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확률의 문제일 뿐 가명정보는 여러 가지 기술적 방법으로 재식별될 수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인 지금은 한 개인의 개별적인 정보를 대량으로 포함하고 있는 데이터 집합을 사용하여 가명정보로 개인을 식별하는 것은 더욱 쉬워졌다. 과징금 등의 처벌 강화 조치는 사후 약방문일 뿐 개인정보 재식별과 유출을 막기 위한 원천적 예방책은 아니다. 재식별 가능성 및 유출의 위험이 있는데도 가명정보 활용 때 정보주체 동의를 생략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이것이 합당한 공공이익 목적을 위한 것이고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침해나 제한의 성격이 약한 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여당이 입증해야 한다. 상업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통계 작성, 일부 주체에게 그 이익이 전유되는 과학적 연구 등은 공공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보인권을 존중하면서 데이터 경제를 발전시킬 다른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 개정안은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개정안은 개인이 자신의 건강정보, 유전정보, 생물학적 물질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명·의학 연구 윤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무리 과학적 발전을 위한 연구이더라도 한 개인은 자신의 윤리적 신념에 반하는 연구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원래 목적이 좋더라도 자신의 가족과 미래 세대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위한 유전체 연구, 인종차별의 근거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유전체 연구,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도 있는 건강 연구, 유전적 특질을 이용한 생물학적 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도 있는 연구 등에 내 건강정보·유전정보가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과학적 연구 참여에 대한 개인의 동의는 연구수행기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개인정보 사용의 주체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통신회사 등 민간기업이 가명정보이더라도 내 건강정보·유전정보를 이용한다고 한다면,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개정안대로라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건강정보·유전정보가 이런 연구에 사용된다. 현재 이 법안은 과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인재근 의원 안으로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정부 입법안을 의원 입법안으로 포장한 것도 궁색하다. 정부 입법안이 가져야 할 여러 절차를 생략하고 관련된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많다. 행안위 위원들은 인재근 의원 안으로 제출된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정보인권을 보장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데이터 경제도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