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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베 앞에 멈춰선 하루키의 ‘매직’/ 안영춘

등록 2019-07-16 17:14수정 2019-07-16 18:51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 단골 1순위 후보다. 스웨덴 한림원이 ‘미투’ 고발 등 내부 사정으로 수상자 선정을 포기한 2018년에는, 대안 격으로 그해에만 운영한 ‘뉴아카데미상’의 최종 후보 4인에 들기도 했다.(그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다”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뉴아카데미위원회는 그의 작품들이 “대중문화와 치열한 ‘매직 리얼리즘’을 융합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여느 노벨 문학상 수상자나 후보자와 견줄 수 없는 그의 대중적인 인기가 고려됐음이 행간에서 엿보인다.

심사 대상에 오른 하루키의 작품 4편 가운데는 2009년에 펴낸 <일큐팔사>(1Q84)가 가장 근작이다. 한국에서도 밀리언셀러가 된 이 작품은 1995년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사건을 모티프 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앞서 그는 이 사건 피해자들과 연루자들을 2년간 추적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 2부작을 내놓기도 했다. 다분히 탈정치적이고 탈사회적인 일상과 내면의 세계를 그리던 그가 이 작품을 자기 문학의 전환점으로 꼽은 것은 이 사건에서 받은 충격이 그만큼 컸음을 방증한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나름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의 삶을 살았던 이가 이 정도였으니 열도의 ‘안전 신화’를 굳게 믿으며 살아온 보통 일본인들은 오죽했을까. 하루키는 일본 사회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터뷰이들과 자신에게 집요하게 물은 끝에, 일본인들은 제도와 시스템에 인격을 맡기고 자기 서사를 갖지 못한 채 살고 있으며, 그 빈자리를 옴진리교 같은 광기와 폭력의 서사가 채우고 있다고 서늘하게 짚었다.

일본 사회가 하루키 같은 통찰력 넘치는 인기 작가를 둔 건 행운이다. 그럼에도 뉴아카데미위원회가 상찬한 그의 ‘매직’이 아베 신조 정부 앞에서 멈춰선 건 불행이다. 아베 정부는 불화수소의 사린가스 전용설을 날조함으로써 이웃 나라뿐 아니라 자기 국민의 깊은 트라우마도 안중에 없음을 스스로 폭로했다. 하루키는 얼마 전 발표한 글에서 “역사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때가 되면 나온다”고 썼다. 화학무기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의 흑역사까지 다시 불러내고 있는 건 누구인가.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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