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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최저임금 살리기 / 전종휘

등록 2019-07-16 17:59수정 2019-07-17 13:59

전종휘
사회정책팀 기자

마른장마였다. 7월이 되면 더운 습기를 잔뜩 머금고 늘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번엔 북쪽 오호츠크해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의 위세에 단단히 눌렸다. 장마전선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비를 흠씬 뿌리는 것조차 버거운 듯 보였다. 최저임금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세종시의 정부청사에서도 올핸 비 구경 하기가 쉽잖다.

2020년 치 최저임금 시급액 8590원이 결정된 12일 새벽하늘도 푸석했다. 공익위원들의 “표결 가능한 최종안을 내라”는 요구에 6.3% 인상안을 제시한 뒤 만난 노동자 위원의 안경 너머 얼굴도 말라비틀어진 듯했다. “노동부 장관도 15일까지 결정해서 알려주면 된다고 하고 우리도 14일까지 논의를 더 해보자는데, 왜 서둘러 오늘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8590원 언저리에 얹힌 노동자가 적으면 137만명, 많으면 415만명에 이른다는 최저임금위원회는 막상 그들의 ‘실제 임금’인 최저임금이 어떤 논리에서 결정됐는지는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결국 표결을 서둘러 사용자 쪽 안을 채택했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세게 얘기할 땐 16.4%, 10.9%를 올리던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인상 최소화”를 얘기하자 이번엔 2.87%를 결정했다. 물론 최저임금의 지급 주체인 소상공인과 영세 기업의 어려움을 비롯해 고용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최임위가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가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모른 척할 순 없다.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때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3년 동안 8590원으로 올라 3년간 인상률은 32.8%를 기록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첫 3년간 인상률 36.6%에 견줘 3.8%포인트 낮은 수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04년엔 10.3%, 2005년엔 13.1%, 2006년엔 9.2% 인상했다. 지난 2년간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선수로 지목당한 뒤 자영업자의 ‘공공의 적’으로 떠오르며 만신창이가 된 최저임금으로선 뒤통수를 매만질 수밖에 없는 수치다. 노무현 정부 3년간 실질 경제성장률이 2.9~4.9%로 문재인 정부와 차이가 나고 경제규모가 그새 커졌다는 점을 살피더라도 그렇다.

‘소득주도’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은 김영삼 정부(26.86%), 김대중 정부(25.58%), 박근혜 정부(24.07%)와 비교해도 연간 2%포인트 안팎 더 오른 셈이다. 워낙 낮은 금액으로 제도가 처음 시행돼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는 노태우 정부 3년간 72%대 인상률은 논외로 치자. 문재인 정부가 3년 동안 매년 10%씩 꾸준히 인상했더라도 내년 최저임금은 8612원에 이른다. 촛불 혁명 직후 인수위원회조차 없이 서둘러 출범해야만 했던 문재인 정부의 어려움을 참작하더라도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해가긴 어렵게 됐다.

결국 이 정부의 최저임금 ‘급가속-급제동’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최저임금 제도 그 자체다. 저임금 노동자한테 최소한의 삶의 존엄성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태어난 최저임금 제도가 중소상공인한테는 ‘지명 수배자’ 정도로 낙인찍히면서 그렇다고 저임금 노동자한테 존엄의 보루가 된 것도 아닌 것 같다. 제도의 효용성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넣기로 해 저임금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임금이 최저임금 위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지며 제도의 효용성이 약해진 뒤라 더욱 그렇다.

당분간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 구제라는 깃발을 높이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효용성을 잃고 스스로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도가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 즉 저임금 노동자한테 간다. 최저임금이 ‘마른장마’ 속에서 말라비틀어지지 않길 속으로 빌어본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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