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1팀 기자 “문재인 정부가 대구·경북을 ‘패싱’하고 있다.” 2017년 5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뀐 이후 대구·경북에서는 걸핏하면 ‘티케이(TK) 패싱론’이 나온다. 진원지는 수십년 동안 지역을 독점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 그리고 한국당 정치인들과 뒤엉켜 지냈던 지역 언론들이다. 주민 일부도 덩달아 티케이 패싱론을 외치며 문재인 정부를 욕한다. 대구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티케이 패싱론과 맞서 싸우느라 곤욕을 치른다. 티케이 패싱론의 근거는 뭘까. 한국당 정치인들의 발언과 지역 언론 보도를 찾아봤다. ‘경찰 고위급 인사에서 대구·경북 출신이 없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었다’ ‘장차관급 인사에 대구·경북 출신이 적다’ ‘원자력해체연구소가 다른 지역에 가버렸다’ 등이다.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국도로공사 임원급에 대구·경북 출신이 적다’ 등도 티케이 패싱이라고 한다. 티케이 패싱론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배타적 지역주의다. 대구·경북 출신의 서울 상류층이 장차관, 공공기관 임원, 경찰 고위급 간부에 적은 것이 뭐가 문제일까.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조금 줄면 대구가 망할까.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는 별 영향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대구·경북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도로 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먹고살려고 고향을 떠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민주당보다 훨씬 더 티케이 패싱을 했던 것은 바로 한국당이다. 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몰표를 받으며 지역을 독점했다. 대구에서는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31년 만에 처음 당선됐다. 김부겸 의원 한 명뿐이었다. 경북에서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20년 만에 처음 단체장에 당선됐다. 장세용 구미시장 한 명뿐이었다. 이는 한국당이 지난 수십년 동안 대구·경북을 얼마나 독점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표는 받아 가면서 지역을 위해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구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다. 대구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도 전국 최하위다. 매년 대구의 청년 수천명이 일자리가 부족한 고향을 떠난다. 대구·경북 경제를 이끌던 구미의 수출액이 국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넘었다. 하지만 이후 곤두박질쳐 지난해에는 4%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구미 경제가 추락하던 기간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였다. 경북도지사와 구미시장도 모두 한국당이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이었던 2016년 4월11일, 당시 서청원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급히 열었다. 그는 “10대 기업 유치를 대통령께 건의했다. 대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했다. 그러자 분노한 대구·경북 기자들의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이 지났는데 왜 지금까지 안 하시다가 지금 여기 와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새누리당이 대구에서 30년 동안 일당독점을 해왔는데 대구 경제는 늘 꼴찌다. 이제 와서 이런 약속을 하면 시민들이 믿을 수 있겠느냐?” 그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우물쭈물하다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는 이날 그 자리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의 만행에 대응해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색깔론’도 빼먹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생겨난 배타적 지역주의는 대구·경북을 망쳤다. 대구·경북 출신이지만 서울에 사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정치인들은 그런 방식으로 지역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챙겼다. 지역 토호세력도 정치인 주변을 맴돌며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손해를 본 것은 평범한 주민들뿐이었다. cool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