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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스무살이 된 장애인들 / 김원영

등록 2019-08-19 17:15수정 2019-08-19 19:05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나는 열다섯살이 되었을 때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았고 탐험할 일이 넘쳤다. 독학으로 배운 사칙연산으로는 중학 수학을 따라가지 못해, 재빨리 분수를 익혀야 했다. 성별이 다른 친구들과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기에 이성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현금지급기에서 돈은 어떻게 인출하는 걸까?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문구류를 고르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직접 고르는 법도 몰랐다.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이 신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을 50살부터 시작했다. 한국 사회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장애인들의 외출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 다수의 장애인은 집과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평생을 보냈다. 나는 1980년대에 태어났으므로 15년 정도의 재가(在家)장애인 생활을 거쳐 세상에 나왔지만, 1950~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40~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의지대로 외출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장애인 대다수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이제 스무살 무렵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노화는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수반하지만 노화에 따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이미 장애를 지니고 살다가 노인이 된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고령장애인에 대한 몇몇 연구들(김세진, ‘장애노인 돌봄의 정책 도출’ 등)에 따르면, 장애를 가지고 노인이 된 사람들은 사회참여 욕구가 크고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반면, 노인이 되면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요양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가운데 나이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사회문화적 활동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장애를 가지고 노인이 된 사람들은 더 적극적이다. 왜 그럴까? 단순하지만 타당해 보이는 가설은 이것이다. 세상에 나와 한 사람의 시민이자 주체로서 살아간 날들이 이제 겨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 꿈꾸고 싶은 욕망,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관계, 싸워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지난주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국민연금공단 1층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올해 만 64살인 박 대표는 50살이 넘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경우도 2000년대 들어서야 이러한 삶이 가능했는데,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이 중대한 계기였다.

그러나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은 활동 지원의 수급자를 만 65살 이전까지로 보고, 그 이후가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각종 추가 급여를 고려했을 때) 장기요양제도에 따른 급여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경우보다 최대 3분의 1 이상 적어서, 하루 12시간 활동 지원을 받았던 장애인이 만 65살이 넘어 장기요양을 받으면 그 시간이 4시간으로 준다는 점이다(본인이 부담해야 할 부담금은 증가한다). 박 대표는 내년 1월7일이면 만 65살이 되므로, 2000년대 이전 정도의 쪼그라든 자유만을 누릴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제 ‘스물’을 살아가는 박 대표는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 2018년 6월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한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언제나 투쟁에 참여할 때도 내가 먼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세상에 늦게 나왔잖아요. (…) 모르고 살아온 것이 후배들한테 미안해요. 좀 더 일찍 눈뜨고 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방 안에서 착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장기요양제도 자체의 보완이 절실할 것인데, 나는 우선 노인 그리고 노인이 될 사람들이 장애를 지닌 노인들의 삶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체의 특성이 어떻든 나이가 얼마가 됐든, 최소한의 ‘요양’이 삶의 전부일 수는 없으며, 언제까지고 계속 싸우고 살아가는 힘을 지닐 수 있음을 보이는 ‘전문가’들이 저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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