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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동북아 미사일 딜레마 / 유강문

등록 2019-10-01 16:52수정 2019-10-02 09:51

유강문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미니트맨-3, 둥펑-41, 북한판 이스칸데르….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이목을 끈 미국과 중국, 북한의 미사일 이름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국의 미니트맨-3과 중국의 둥펑-41은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무대에 등장했다. 중국은 이날 보란듯이 둥펑-41을 공개했고, 뒤질세라 전날 미국에선 미니트맨-3의 시험발사 예고가 나왔다. 지난 5월 선보인 북한의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은 한국과 미국의 미사일 방어(MD)를 교란할 수 있는 ‘요주의 무기’로 떠올랐다.

미니트맨-3은 미국 본토에서 발사하는 유일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B-52 전략폭격기, 핵잠수함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전력’으로 꼽힌다. 여러 발의 핵탄두를 싣고 음속의 20배 속도로 최대 1만3000여㎞를 날아간다. 중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둥펑-41은 이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무기다. 사거리가 1만2000㎞ 이상이어서 역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다. 최대 10개의 핵탄두를 싣고 음속의 25배 속도로 날아가 목표물을 100m 오차범위에서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전멸시킬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상징한다.

상호확증파괴는 상대의 핵능력이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한 뒤에라도 자신의 남은 핵능력을 이용해 상대를 전멸시키는 보복전략을 가리킨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방어벽으로 작동했다.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선 핵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정교한 미사일 방어와 압도적인 핵능력을 앞세워 선제적인 핵 사용을 용인하는 ‘일방확증파괴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남중국에서 펼치고 있는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위협한다. 중국의 전략은 정교한 레이더와 중거리 미사일을 연안 지역에 집중배치해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전투기가 남중국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전략이 미국과 충돌하더라도 상호확증파괴라는 억제력에 의해 전면적인 핵전쟁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 턱밑까지 다가섬으로써 이런 전략의 실효성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전략이 충돌하는 지점에 북한의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이 있다. 북한이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개발에 착수한 것은 2017년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공식화한 직후로 추정된다. 이전까지 북한의 전략은 한국과 일본, 괌의 주요 항만과 공항에 대한 제한적 타격을 통해 미군의 전시 증원을 저지하고,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를 통해 미국의 핵보복을 억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드 배치가 제한적 타격 위협을 상쇄함으로써 이런 전략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미사일 방어를 돌파하기 위해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개발해야 했던 상황과 비슷한 처지에 빠진 셈이다. 북한의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시험발사가 모두 사드와 패트리엇(PAC) 미사일의 요격 고도 사이에 집중됐다는 데서도 북한의 이런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은 물론, 중국에 대해서도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핵억제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자신의 핵능력을 유지하면서 미사일 방어를 강화해 상대의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유감과 실망을 표시한 것도 한·미·일 협력이 이런 전략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확충하고, 미사일 방어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 미사일이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동북아의 ‘미사일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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