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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진짜 세대 정치

등록 2019-10-17 17:19수정 2019-10-18 13:01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그간 물밑에 잠복해 있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공론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 세대 문제다.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는 장년 세대가 대부분이었고, 이에 맞선 광화문 집회는 노년 세대 중심이었다. 청년 세대의 다수는 둘 중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못한 채 이 사회에 거리감만 느껴야 했다. 3년 전만 해도 이들 젊은 세대는 장년층과 함께 촛불 광장의 주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년층과 노년층 사이 이상으로 청년층과 이들 기성세대 전체 사이에 깊은 골이 있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간 간간이 이야기되던 ‘세대 정치’가 새삼 언론의 각광을 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계급보다 세대가 불평등을 결정하는 주된 변수라는 진단이 유행하고, 그렇기에 구세대에게 공정한 사회를 요구하는 청년 세대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좌우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나온다. 과연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 사회의 계급 불평등은 묘하게 세대와 중첩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뿐일까? ‘세대 정치’라는 말로 포착해야 할 우리 시대의 진실이 정말 이것뿐일까?

한국이 한창 검찰 개혁 문제로 시끄러울 때 나라 밖 세상이 주목한 것은 한 10대 학생의 고군분투였다.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2년 전부터 정치인들이 시급히 기후 위기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금요일마다 학교를 쉬고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동년배 학생들이 이에 호응해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나섰다. 이후 스웨덴뿐만 아니라 세계 이곳저곳에서 이렇게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학생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연합 회의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툰베리의 매서운 눈길이 화제가 됐지만, 트럼프와 툰베리는 어쩌면 상징일 뿐이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10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그러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모든 문제를 항상 더 많은 생산과 소비, 더 거대한 자본 순환으로 봉합해왔고, 그 결과는 지구 생태계와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된 과잉 생산과 낭비, 우주적 규모의 부채다. 이에 대한 지구 생태계의 반격, 즉 기후 변화 탓에 지금 살날이 더 많이 남은 세대일수록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 제3권(제46장 ‘건축지대, 광산지대, 토지가격’)에서 토지 소유 문제를 짚으며 뼈아픈 경고를 남겼다. 그는 당연히 토지의 사적 소유를 비판하는데, 그렇다고 사회가 소유하면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도 않는다. “한 사회 전체”도, “같은 시대의 모든 사회를 다 합친다고 해도” 토지의 진정한 소유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점유자”나 “수익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시조라 불리는 이의 주장치고는 의외다.

그가 이렇게 주장한 것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역시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공동 소유주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세대가 “스스로 좋은 아버지로서 후세대에게” 토지, 그러니까 지구를 더 나아진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9년 현재 지구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책임을 거역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심판을 면치 못할 우리의 죄목이다.

세대 정치는 확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구세대가 이어온 맹목의 질주에 새 세대도 끼워달라는 것일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구세대의 ‘전향’을 요구하는 세대 정치다. 툰베리와 그 친구들의 세대 정치다. 이 세대 정치에서 기성세대는 공격받아야 할 적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와 생활양식을 향해 ‘전향’하기만 하면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새 세대의 동지다.

시간이 얼마 없다. 재앙의 속도가 전향의 속도를 저만치 앞서고 있다. 한국 사회에 하루빨리 진짜 세대 정치가 시작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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