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 맞춤법’은 조선어학회가 1933년 제정한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기본으로 해 문교부가 1988년 확정·고시한 것이다. 당시 문교부는 수십년 세월의 변화를 반영해 맞춤법을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하면서 ‘표준어 규정’도 함께 정비했다. 표준어 규정은 같은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을 때 어느 것을 표준어로 삼을지 정한 것이다.
이를 테면 발음의 변화를 인정해 강남콩, 미싯가루, 삭월세, 상치, 주착 등을 버리고 강낭콩, 미숫가루, 사글세, 상추, 주책 등을 표준어로 삼았다. 본말보다 준말이 자주 쓰이는 경우는 똬리(또아리), 무(무우), 생쥐(새앙쥐), 솔개(소리개) 등 준말을 표준어로 채택했다.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해 수꿩, 수놈, 수소 등을 표준어로 삼았다.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라 표준어로 선택된 단어도 있다. 양파(둥근파), 자두(오얏), 총각무(알타리무) 등이다.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는 경우 그것을 표준어로 삼았다. 방언이 표준어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귀밑머리(귓머리), 빈대떡(빈자떡), 코주부(코보) 등이다. 다만 원래 표준어가 학술 용어 등에 쓰이는 점을 감안해 버리지 않고 계속 표준어로 남겨둔 단어도 있는데, 어린순과 애순, 선두리와 물방개 등이다. ‘복수 표준어’다. 같은 뜻을 나타태는 표준어가 두 개 이상인 경우다.
복수 표준어는 우리말의 폭을 넓히는 장점이 있어 ‘인터넷판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고소하다와 꼬시다, 괴발개발과 개발새발, 날개와 나래, 냄새와 내음, 벌레와 버러지, 복사뼈와 복숭아뼈, 봉숭아와 봉선화, 손자와 손주, 예쁘다와 이쁘다, 자장면과 짜장면, 허섭스레기와 허접쓰레기 등이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판하면서 쓴 ‘우렁쉥이’도 마찬가지다.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제발 정신 차리고 국민들을 보고 정치하라. 우리 편만 보고 정치하는 속 좁은 우렁쉥이 정치는 이제 그만두어라”라고 주문했다. 우렁쉥이는 멍게다. 원래 우렁쉥이가 표준어고 멍게는 방언인데, 언제부턴가 멍게가 더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포장마차에서 멍게 한접시 달라고 하지 우렁쉥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음절 수가 적고 발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렁쉥이가 표준어에서 퇴출된 건 아니고 복수 표준어로 남았다.
홍 전 대표에게 굳이 생경한 우렁쉥이를 쓴 이유를 물어봤다. “일부러 멍게 대신 우렁쉥이를 썼어요. 소라고둥처럼 우렁쉥이는 속이 아주 좁아요. 그래서 경상도에선 속 좁은 사람을 우렁쉥이 같다고 합니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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