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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강제동원 피해자 중심의 해법을 / 조기원

등록 2019-11-07 18:09수정 2019-11-08 02:05

조기원ㅣ도쿄 특파원

지난 5일 문희상 국회의장의 강연회가 열린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 강의실. 입장객은 소지품 검사부터 받아야 했다. 경찰들이 학교 주변에 배치된 모습도 군데군데 보였다. 지난 2월 일왕 사과로 ‘위안부’ 피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외신 인터뷰가 보도된 뒤, 문 의장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이 작용한 듯 보였다. 실제로 문 의장이 강연 때 당시 발언과 관련해 “일본 분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자, 청중 한 명이 “상왕(아키히토 전 일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일본을 찾은 문 의장은 양국 간 최근 가장 민감한 문제인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문 의장은 한·일 양국의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 등으로 기금을 만드는 법률을 한국에서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까지 포괄하는 입법을 통해 더 이상 한-일 과거사 문제 소송이 발생하지 않게 하자고 주장했다.

문 의장의 제안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깊게 고민한 끝에 나온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문 의장도 강연 때 “양국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쳐 모두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의장의 이번 제안에 대해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우선 기금의 성격이다.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지난 1일 한일·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 때 기금과 관련해 “미래지향적인 것들, 에너지 등 신산업을 위해 기금을 만든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 배상 성격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경제협력 기금 정도의 성격이어야 일본이 고려해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기금이 강제동원 피해 배상 성격을 완전히 부인하는 형태로 변질되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로 자발적 모금을 앞세웠기 때문에 강제동원에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의 참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강제동원은 일본 기업들이 가해의 주체인데, 이들이 빠진 기금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이 기금에 참여한다고 해도, 참여 이유가 강제동원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도 많아 보인다.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점은 피해자와 대화를 했느냐, 그리고 피해자 중심의 방안이냐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번복하지 않는다면 오는 23일 0시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종료된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를 연장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 주장도 완강하다.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은 전혀 배상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극적 타결이 없으면 내년 초에는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을 이행하기 위한 피고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대항 조처”라면서 추가 보복 조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앞에 놓인 상황은 엄혹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서둘러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문 의장도 강연에서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피해 당사자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는 합의는 시작부터 현실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중심도 같다.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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