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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문재인과 박근혜의 ‘골든타임’/곽정수

등록 2019-11-11 16:42수정 2019-11-11 19:27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골든아워’가 있다. 당신이 심각하게 부상을 당했다면 당신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60분 이하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놓쳐 제때 치료를 못하면 바로 죽지 않더라도 결국 회복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외과의사 R 애덤스 카울리 박사) ‘응급의료와 외상치료의 선구자’로 불리는 카울리 박사(1917~1991)는 ‘골든아워’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방송에는 ‘황금시간대’가 있다. 텔레비전의 경우 평일은 오후 8시~밤 12시, 주말은 오후 6시(또는 7시)~오후 11시30분을 가리킨다. 황금시간대의 광고비는 평소 시간대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골든타임’은 절대 놓쳐서는 안되거나 핵심적으로 중요한 금쪽같은 시간을 뜻한다. 정치권도 이 말을 애용하는 단골 고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 국회 시정연설 때 “정부는 국가 혁신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 (중략)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골든타임을 놓쳐 역사의 죄인이 될지는 몰랐을 것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게 뒤늦게 드러나 모든 국민이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청와대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 침실에 머물다가 사고보고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구조 지시도 늦게해 304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2016년 최순실 사태 때도 수습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재명 경기 지사(당시 성남 시장)는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최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하야을 거부하자 ”수습의 골든타임이 지났다”며 퇴진운동을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6월 취임 뒤 처음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지금이 우리 경제를 회복시킬 골든 타임”이라며 추경 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맞아 분야별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경제는 1%대의 낮은 성장률 전망, 어려운 고용사정 등을 이유로 높은 점수를 못받고 있다. 보수진영이 소득주도성장 등 기존 정책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정치공세’ 성격이 짙지만, 지지층인 진보에서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뼈아프다. 정권 초기 국민 지지도가 높고, 정권에 힘이 있을 때 개혁의 핵심과제를 신속히 추진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경제인 핵심인 재벌개혁을 위해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와 공정위 전속고발제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두 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가 직접적 이유지만, 개혁전략 실패 탓이라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조속한 재벌개혁 요구에 대해 “역대 정부가 개혁에 실패한 것은 개혁에 대한 조급증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엄정한 법 집행→재벌의 자율적 변화 유도→부족한 부분에 대한 법제도 개편이라는 ‘3단계 개혁론’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결과는 미흡하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순환출자 해소 등 일부 재벌의 소유구조만 개선됐을 뿐, 총수의 전횡적 경영행태는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핵심과제는 정권 초기 신속히 처리하고, 나머지 과제는 이후 일관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병행전략이 아쉽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조국 사태’를 통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는데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권 초기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분리 등 핵심 과제를 서둘렀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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