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운 부끄러운 세계 신기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자살률도 노인빈곤율도 모두 최악이고,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통계 차원의 사회적 참극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아도, 인권 방면에서 한국이 세운 또 하나의 세계 신기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오히려 국외 인권운동가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세계 최장기수의 나라이며, 제도적 민주화가 된 국가 중에서는 양심수들이 가장 많은 나라다.
김선명(1925~2011) 선생. 그가 2000년에 북송된 뒤로는 국내에서 거의 잊힌 이름이 되었지만, 세계 인권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기억되는 이름이다. 그는 해방 전후 시대의 좌익 운동가였고, 6·25가 터진 뒤로는 북한군 편에 서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군사 재판부는 그가 속한 정찰대를 ‘간첩 부대’로 간주했고, 그는 ‘간첩’으로 분류되어 기한도 없이 감옥에 갇혔다. 그는 거의 45년을 0.75평 크기의 독방에서 보내게 된다. 구금 기간 동안 그가 가졌던 면회는 7회에 그쳤다. 가족 중에 ‘빨갱이’가 있다고 해서 아버지와 누이는 보복 살해 당했고, 연좌제로 고통받는 일가친척들은 감옥 근처에도 가지 못해 면회 갈 사람도 없었다. 좌우파의 신념 등을 다 떠나서 한 국가가 한 사람을 이토록 오랫동안, 이토록 철저하게 괴롭히면서 그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아니 김선명뿐이었나? 김선명, 우용각, 최선묵처럼 고문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말까지 살아남아 결국 석방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절대로 ‘다수’가 아니었다. 상당수는 고문과 질환에 시달리다가 옥중에서 홀로 죽어나갔다.
살아남은 초(超)장기수들은 김대중 집권기에 대부분 풀려나왔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인권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아픈 몸으로 세계 신기록들을 세운 초장기수들은 풀려났어도 양심수들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양심수의 대다수는 병역거부자다. 또 하나의 부끄러운 세계 신기록이지만, 징병제가 존재해온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서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합계는 약 1만9천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평화주의자를 감옥에 보낸 국가를 세계사에서 다시 찾기는 힘들 것이다. 앞으로는 머지않아 대체복무제가 신설되어 평화주의자들이 수감되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주의자들의 문제는 그나마 해결의 전망이 조금은 보이지만, 촛불 항쟁 이후에도 여전히 수감되어 있는 또 한명의 양심수가 있다. 바로 2013년 ‘내란 음모’ 사건의 피해자인 이석기 전 국회의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폐 정권 시절 보안기관들의 각종 ‘사건’ 조작에 대해서도, 양승태 시절의 ‘재판 거래’와 같은 사법 정의 왜곡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석기 전 의원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을 때, ‘내란 선동’의 거의 유일한 증거물은 그의 연설을 비밀리에 녹음한 테이프에 기반한다는 녹취록인데, 녹취록 작성의 토대가 된 파일의 일부가 원본이 아님이 밝혀져 법률가 사이에서는 그 증거 능력을 두고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가 설령 문제가 된 연설에서 일부 과격한 표현을 썼다 하더라도 내란을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준비도 하지 않았음은 법원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일부 과격한 표현의 사용에 대해서 징역 9년형을 받은 셈이 되는데, 이런 판결이 과연 정상적 법치국가에서 가능한가?
한번 생각해보자. 징역 10년 정도면 살인범이 받을 수 있는 형량이다. 참작할 만한 정상, 예컨대 격분한 상태에서 저질러진 살인이라는 점 등이 드러나면 형량이 4~5년으로 줄어든 판례들도 있다. 강간죄의 형량은 3년 이상이다. 한국 재벌의 ‘갑질’을 세계인들에게 알린 ‘땅콩회항’의 조현아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아예 실형을 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한 연설에서 신중하지 못한 몇가지 표현을 사용한 이석기는, ‘갑질’로 세계적 악명을 떨친 재벌가와 비교할 수도 없고 강간범보다 3배 이상이나 되는 거의 살인범 정도의 중벌을 정말로 받아야 마땅한 것이었는가? 이석기 전 의원의 정치적 신념에 동감할 일이 없는 미국 국무부와 <뉴욕 타임스>까지 그 유죄판결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 사례로 거론할 정도였다는 사실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미국의 시각’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기는 국내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이석기 전 의원을 감옥에 있어야 마땅한 ‘비국민’으로 여긴다. 한 사람에게 국가가 가하는 고통에 대한 이 무감각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역사학으로 밥을 먹고 산다. 어떤 일을 봐도 거의 습관적으로 이 일을 역사 속에서 맥락화하곤 한다. ‘내란 음모’ 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도 결국 한국 안보기관과 사법부의 강경 보수주의자들이 저지른 정치적 ‘이단’ 사냥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이 사냥은, 대한민국이 분단 과정에서 냉전 최전선의 반공·안보 국가로 태어남과 동시에 개시되었다. 이 사냥의 과정에서 벌어진 초기의 유명한 사건이 바로 1949년의 소위 ‘국회 프락치 사건’인데, 그 사건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인정한다. 그 뒤로는 병영화된 나라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적 규율에 약간이라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진보 인사들이 계속해서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희생되었다. 1959년에 이승만 독재 정권으로부터 법살당한 조봉암은 2007년에 명예회복되었고 그의 평화통일론은 이미 이 사회의 통념이 되었다.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1969년), 인민혁명당 사건(1975년), 남민전 사건(1979년) 등으로 억울하게 죽거나 옥살이를 해야 했던 이들은 이미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되었다. 사노맹 사건(1991년) 피해자 출신 중에는 단명한 법무부 장관부터 현역 시장, 그리고 재미 교수 등이 있다. 그들이 ‘국가 전복’이 아닌 민주화의 완성과 좀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했을 뿐이라는 것은 이제 자타가 인정한다. 적폐 정권 ‘내란 음모’ 사건의 피해자는 이승만 정권 시절의 조봉암, 박정희 정권 시절의 통일혁명당이나 인민혁명당, 노태우 정권 시절의 사노맹 사건의 피해자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크게 봐서 계속 이어져온 정치적 ‘이단’ 사냥에 엮여 희생된 것은 마찬가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은 안보·경찰 국가의 반공 규율을 다수에게 강요하기 위해 이런저런 ‘사건’들을 조작해왔다. 그러나 인권 본위의 관용 사회 건설, 그리고 남북의 평화공존체제 구축이 시대적 과제가 된 오늘날 적폐 정권이 감옥에 보낸 조작된 ‘사건’의 피해자를 계속 감옥에 가두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석기 같은 이 나라의 대표적 양심수를 석방해야 우리가 드디어 인권이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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