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지난 연말 2020년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가 몸살을 앓았다. 누군가에게는 ‘민주주의의 진전’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식되었을 그 시간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란 뭘까를 생각해본다.
민주주의는 가치와 원리, 제도 등 여러 차원에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지구상에 그 말이 등장하게 된 기원은 인간들이 만든 정치체제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은 귀족정, 참주정을 두루 경험한 뒤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실험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든 발언할 기회를 갖고, 돌아가면서 공직을 맡으며, 모두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정치체제를 실험해 나갔다. 누군가 미리 만들어둔 이론이나 사상은 없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함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집행하면서 당연하게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냈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면서, 지금 우리가 민주정의 고대적 기원이라 생각하는 그 독특한 정치체제를 만들어갔다.
근대 대의제 민주정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과 전혀 다른 정치체제다. 직업정치인이 있고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가 있는 정치체제는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 실험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물론 대의제 민주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 시점에도 미리 만들어진 교본 같은 건 없었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왕과 협약을 맺고 파기되고 또 협약을 맺는 수백년을 보내면서, 미국 사람들이 식민지에서 독립을 꿈꾸며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오랜 시간 공화국을 만들었다 폐기하고 또 만들면서 그렇게 보통선거권에 기반한 대의제 민주정이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갔다.
오늘날 이 시대 민주정이 당면한 문제는 100년 전과 다르고 불과 10년 전과도 다르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 시민들이, 또 한국의 시민들이 당면한 문제들도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대 그리스 아네테의 그것과, 근대 어느 시점엔가 만들어진 그것과,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것을 ‘민주정’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뭘까?
생각과 이해가 서로 다른 시민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공존하면서도, 당대 중요 문제들을 그때그때 다수의 결정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체제가 당대 중요 문제를 다루는 데 정답 같은 건 없다. 늘 새로운 구성원들이 늘 새로운 조건에서 전례없는 문제들을 대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체제엔 당대 다수의 결정에 대한 회의가 필수적이며, 당대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다는 신념은 위험하다. 당대 다수의 결정은 항상 잠정적이며 시간을 이길 다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이 체제의 속성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공동체 중대사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 주체로서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신념을 가질 권리가 있고 또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나의 신념이 항상 상대보다 우월하고 옳다는 생각은 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든다. 민주주의는 선지자들을 위한 체제가 아니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사람들을 위한 체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공수처법, 선거제의 비례대표성 확대는 소수의견이었지만 지금 국회 다수의견은 바뀌었다. 그때 다수자들은 지금 다수의견을 인정하면서 공존해가야 한다. 지금 다수자들은 이 결정 또한 잠정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지난 연말 우리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무수한 다수의 결정들 가운데 몇 개를 한 것일 뿐이다. 이 결정은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을 낳을 것이고 우리는 또 새로운 난제들에 직면할 것이다. 2020년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 구도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더 겸손하고 상대의 신념에 더 너그러운 사람들이 조금은 더 많아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