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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간디의 길, 레닌의 길 / 고명섭

등록 2020-01-05 17:43수정 2020-01-06 02:38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레닌(1870~1924)과 간디(1869~1948)를 꼽았다. 올해는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이 태어난 지 150년 되는 해다. 지난해는 인도 해방의 아버지 간디가 태어난 지 150년 된 해였다. 레닌과 간디는 한 살 차이의 동시대인이었다. 두 사람이 변호사가 된 것도 똑같이 1891년이었다. 간디는 이른 나이에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남아프리카로 가서 인도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려고 분투하다 1915년 귀국했다. 이후 간디는 인도 민중 해방을 위한 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일찍이 마르크스주의 혁명가가 된 레닌은 시베리아 유형을 다녀온 뒤 1917년 러시아 2월혁명이 날 때까지 대부분의 세월을 국외 망명으로 보냈다. 레닌이 1917년 4월 ‘밀봉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올 무렵, 간디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열차 3등칸에 선 채 인도 전역을 돌았다.

차별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목표는 같았지만 걸어간 길은 아주 달랐다. 레닌은 폭력과 독재를 인간 해방의 수단으로 보았다. 레닌주의는 레닌주의로 끝나지 않았다. 레닌주의를 이어받은 스탈린주의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 이념이 됐고, 레닌 혁명을 본받아 그 반대편에서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극우 이념들이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은 레닌주의의 쌍생아인 좌우익 극단주의 사이의 전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레닌주의의 변종인 트로츠키주의는 미국으로 건너가 네오콘을 낳기도 했다.

간디는 비폭력과 불살생, 곧 아힘사를 저항의 대원칙으로 삼았다. 간디는 평생 사티아그라하 곧 ‘진리의 힘’을 믿고 따랐지만, 그때의 진리는 내가 상처를 입을지언정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겠다는 아힘사의 원리를 따르는 데 있었다. 간디는 모든 종교의 화해와 일치를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1948년 간디는 이슬람과 힌두교의 화해를 요구하다 힌두교도가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20세기는 대체로 레닌주의와 그 변종들이 일으킨 전쟁과 폭력으로 물든 시기였다. 한국전쟁도 좌우익 극단주의의 갈등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세계는 조금씩 간디의 평화주의가 승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해엔 간디가 보여준 화해와 일치의 정신이 한반도의 길이 되길 바란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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