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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개인주의라는 핑계 / 김선기

등록 2020-01-08 18:34수정 2020-01-09 02:06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연구 과정에서 노동조합 실무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다수의 집행부원은 노조 활동이 얼마나 순탄하지 않은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회사도 국가도 아닌 조합원들의 개인주의가 주요한 걸림돌로 꼽혔다. 이미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만연해 있어서 노조에 가입하거나 활동에 참여하는 일에 적극적인 개인은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성향은 젊은 세대일수록 더 강하다고 여겨진다. 나이로 보아 청년세대에 속하는 실무자들도 청년들은 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대학의 학생회나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 정치적 공동체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조직 또한 만연한 개인주의로 인해 곤란함을 겪는 것으로 곧잘 이해된다. 최근의 M(밀레니얼)-Z세대 담론은 아예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에 맞추어 조직문화와 사회구성 원리를 변화시킬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어로 개인주의를 끌고 오는 일은 부적당하다. 두 가지 경우를 나누어 이야기해볼 수 있다. 우선, 개인주의를 문제 현상으로 보는 경우. 이러한 입장은 여전히 그래도 집단이 개인보다 중시되어야 한다는 집단주의 편에 서서 그래도 공동체는 필요하다는 논리를 쓸쓸히 반복한다. 조직 행사나 의례에 충분히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개인들에게는 이기주의라는 부정적 낙인이 찍힌다. 개인의 부적응이나 무관심 이전에 개인을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는 메커니즘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공동체의 변화보다는 복원에 초점이 맞춰지곤 한다. 공동체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버린 개인주의자들을 설득하고 계몽해야 할 도덕적 지위에 있다고 본다.

반대로 개인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는 경우. 이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 이제는 더 다수로 보이는데, 이들은 개인이 더는 집단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주어진 조건으로 보고 여기에 어울리는 조직체의 다른 역할을 고민한다. 예컨대 한 노조 활동가는 조합원 개인들의 요구를 잘 듣고 이를 해결하는 서비스센터 내지는 고충처리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을 오늘날 노조의 임무이자 ‘능력’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어차피 노동조합 내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조직해 무언가를 바꾸는 정치적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짙은 까닭이다.

얼핏 개인주의를 인정하는 흐름은 공동체로부터 탈주했다고 여겨지는 개인들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자들로 선언된 현대인들이 연결 욕구,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해버린다. 게다가 공동체를 경유하는 정치의 가능성을 섣불리 포기한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 유권자를 붙잡기 위한 정당들의 행보에서도 포기의 흔적이 느껴진다. 전통적인 사회 조직으로 연결되지 않은 청년 개인들을 정치적으로 연결할 방안에는 별 관심이 없이, 개인주의자인 그들에게 공약이나 이미지로 자극을 주어 반응을 끌어내려는 접근만 반복한다.

개인과 집단의 이분법, 그리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창궐한다는 위기감은 최근의 일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그 연원이 오래되었고 꾸준히 반복되었다. 그 세월 동안 그 많았던 ‘개인주의자들’은 집단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수많은 현상에 참여해왔고,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를 구축하고 또 허물어왔다. 이러한 역사로 볼 때, 개인주의는 어쩌면 수많은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발화되어온 하나의 핑계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있다. 기존의 집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개인주의자’임을 내세우는 것은, 기존의 집단이 쇠퇴하는 것을 애석해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논하는 것은 그저 훌륭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다음 세대의 새로운 공동체는 복잡한 인간 행동을 가장 납작하게 만드는 이해 방식인 개인주의 그 자체의 표면성을 인식하고 그 이면을 탐구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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