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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부동산 문제, 진보정당의 시험대

등록 2020-01-09 20:34수정 2020-01-10 09:40

장석준 l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지난달 정부가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다.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나서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 공공 소유 부동산을 늘리는 데 쓰는 ‘부동산공유기금’ 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이렇게 자산 소유 불평등 문제로 시끄러운데도 진보정당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의당도 간간이 논평을 내거나 시민단체들이 내놓은 정책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기는 한다. 그러나 정의당만의 혁신적 정책을 제시한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연구와 논의는 있다. ‘부동산공유기금’ 안만 해도 정의당 안에서 비슷한 내용이 검토된 바 있다. 하지만 논의만 했지 자신있게 공표한 적이 없다.

진보정당이 왜 이렇게 부동산 문제에 둔감하고 소극적인 것일까? 몇가지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첫째는 소선거구제 효과다. 이제껏 선거제도의 큰 줄기는 소선거구제였다. 이 제도 아래서는 어느 정당 후보든 지역구 안에서 상당수 표를 움직일 수 있는 단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단지 주민회이고, 이를 주도하는 이들은 대개 자가 소유자다. 세입자는 ‘투명인간’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정당조차 부동산 문제를 놓고 자가 소유 계층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선거제도 탓만 할 수는 없다. 진보정당이라면 모름지기 선거 때만이 아니라 일상 시기에도 대중과 만나며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점에서 한국 진보정당운동은 커다란 한계를 안고 있고, 여기에서 부동산 문제에 취약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진보정당의 주된 조직적 토대는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의 노동조합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편중돼 있다. 이들은 대체로 집 걱정이 별로 없는 자가 소유 계층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주거 문제에 발 벗고 나설 이유도 없고, 진보정당 역시 별다른 압박을 받지 않는다.

노동조합 말고도 다양한 대중조직이 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가령 세입자조합이 조직돼 있다면 어땠을까? 개별 계약만이 아니라 사회적 협상을 통해 임대료를 결정하고자 하는 세입자조합이 발전해 있고 이런 조직이 진보정당과 활발히 교류하는 상황이라면? 주거 문제가 진보정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 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세와 월세가 복잡하게 공존하는 한국 사회 특성 때문에 세입자조합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이 나서서 세입자를 조직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아직 이렇게 시민사회를 스스로 조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런 점 역시 진보정당이 부동산 문제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중대한 이유다.

마지막으로는 진보정당이 한국 사회를 바꾸는 장기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자본주의를 바꾼다는 궁극 목표에 맞춰 일상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게 본래 진보정당에 기대되는 바다. 이런 기대대로 움직인다면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임이 너무도 분명한 부동산 소유 불평등에 소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수정당들과 마찬가지로 그날그날 여의도의 이전투구를 따라가기 바쁘다. 정의당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이제 몇달 뒤면 총선이다. 총선에서 진보정당은 위의 한계들 속에 여전히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확인받을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가장 약진한 때는 민주노동당이 부유세를 주창했던 2004년 총선이었다.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내건 이 선거에서 진보정당은 바람을 일으켰고, 그렇지 못했던 때에는 침체에 빠져야 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혁명적 수준의 부동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침체의 끝을 기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선거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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