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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유칼립투스를 누가 죽이는가 / 이라영

등록 2020-01-15 17:50수정 2020-01-16 09:26

이라영 ㅣ 예술사회학 연구자

강원도 철원에서는 얼음트레킹축제가, 화천에서는 산천어축제가 제날짜에 이뤄지지 못했다. 산천어축제는 그동안 동물학대 등의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축제의 연기나 취소 사유가 이 동물학대 때문은 아니다. 산천어축제는 꽁꽁 언 빙판에 구멍을 뚫어 미리 풀어놓은 물고기를 잡는 행사다. 그런데 날씨가 춥지 않아 강에 얼음이 오히려 녹아내리니 안전문제로 행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날씨는 왜 안 추울까. 기후위기에 대해 경고를 들은 지는 오래지만 수년 전부터는 피부로 느낄 정도다. 얼음이 얼던 시기에 얼음이 녹고 눈이 오던 시기에 비가 온다.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며 기후위기에 일조하던 사회는 이제 그 기후위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을 맞고 있다. 기후니 환경이니 동물권이니 하는 소리에 귀 닫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만 향해 달려온 사회에서 이제라도 뭔가 느낀다면 좋겠지만 별로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지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더워지는 중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북극의 많은 생명이 멸종 위기에 있다.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을 보면 ‘기후 재앙’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산불도 자연현상 중 하나다. 이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서부에서 이어지는 산불이나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를 집어삼키는 불은 자연현상의 범위를 벗어난 재해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면 그만큼 회복력도 잃는다. 나중에는 아예 숲이 사라질 수도 있다. 많은 야생 동물과 식물, 물고기, 조류, 미생물 등이 숲을 구성한다. 숲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숲이 사라질수록 더욱 덥고 건조해진다. 건조하고 무더워진 지구에서 우리가 잃어버릴 것은 상상 이상이다. 숲이 미래가 없으면 인간에게도 미래는 없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3년 총선에서 자유-국민당 연합이 탄소세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집권에 성공하자 첫 입법안으로 탄소세 폐지 법안을 하원에 상정했다.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탄소세는 결국 폐지되었다. 있던 법마저 없애버리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규제개혁을 추진했다. 어디 오스트레일리아만의 일인가. 녹색성장, 도시재생처럼 ‘녹색’과 ‘재생’이 또 다른 개발과 성장을 위한 기만적인 어휘로 동원되어 꾸준히 사람들을 속여왔다. 오스트레일리아가 규제개혁으로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 ‘배우자’고 목소리 낸 사람이 많았다.

탄소세는 석유, 석탄 등 사용한 화석연료의 탄소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이다. 1990년 핀란드에서 처음 도입했고,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에 이어 일부 유럽 국가와 캐나다 등이 탄소세를 시행한다. 탄소세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달성하는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에너지 소비 구조 등을 고려하여 세심한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다.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알림이다. 눈앞에 펼쳐진 ‘재앙’을 견딜 수 없어 식단을 바꾸고, 생활방식을 바꾸는 개인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구조적 정책 없이 개개인의 선의와 참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구는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빠르게 생물들이 멸종하는 중이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낫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식물은 유칼립투스다. 100여년 전에 역사적인 가뭄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칼립투스와 아카시아나무가 대규모로 죽었다. 시간이 흘러 숲이 회복되어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다시 유칼립투스가 풍성해졌다. 유칼립투스는 염증 치료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어 약으로도 많이 쓰인다. 그동안 인간의 수많은 상처를 치료해준 이 나무들이 대규모 산불로 상처 입고 다시 죽어가는 중이다. 이번에도 유칼립투스는 세월을 견디며 회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지구 온도는 더 오르고 더욱 건조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흐름을 최대한 막는 게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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