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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알바니아만도 못하면서 / 손아람

등록 2020-01-22 17:59수정 2020-01-23 09:44

손아람 ㅣ 작가

“세계 7위 무역대국이 따라 한다는 제도가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알바니아(의 것)인데 부끄럽지 않은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증명하겠다.” 지난해 말 국회의 선거법 개정 무제한 토론 중 권성동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다수 언론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성정당’ 난립 때문에 알바니아에서도 버려진 선거제도라는 말을 받아썼다. 이미 그전부터 자유한국당은 알바니아 사례를 언급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해왔고, ‘미래한국당’이라는 이름으로 이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정치를 혐오하지 않기가 이토록 어렵다. 하지만 알바니아와의 비교는 아주 잘못됐다. 자유한국당을 대신해 알바니아에 사과하며 정정한다. 한국은 알바니아보다 훨씬 못하다. 자유한국당에서 언급한 2005년 알바니아 선거의 소수 정당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급조된 위성정당들이 아니었다. 1990년대 알바니아의 민주화와 함께 창당한 독립적인 연혁을 가진 정당들이고, 그중 대다수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폐지된 현재에도 존속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소수 정당들이 연합체를 구성한 것을 관점에 따라 추잡한 거래나 정치적 야합이라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선거제도를 편법적으로 우회하는 유령 정당을 만드는 작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인 알바니아의 선거 연대 사례는 오히려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후보 단일화와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하다. 외신들도 예외 없이 당시 알바니아 선거의 정당들을 ‘위성정당’(satellite party)이 아닌 ‘연합체’(Coalition)나 ‘동맹’(Alliance)으로 적었다.

한편 미래한국당을 ‘위성정당’이라 이르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적어도 자가 공전으로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위성”이라 부를 수 있다. 주권이 결여된 채로 창당한 뒤 본체로 곧 흡수가 예정된 정당이 위성일 수 있을까? 미래한국당은 ‘위장정당’에 더 가깝다. 자유한국당은 배신을 막기 위해 당직자의 아내를 미래한국당의 대표 발기인으로 내세웠는데, 최악의 경우에도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을 공범으로 가담시키는 것 역시 위장전입과 위장회사 설립 전략의 정수이다. 알바니아의 사례에서 생각해볼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을 동원해 위장정당을 만들어내는 기상천외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놔두고, 왜 알바니아 정치인들은 의석 지분을 거래하는 골치 아픈 정치적 연대체를 결성했을까? 머리가 나빠서? 상상력이 부족해서? 가족이 없어서? 유럽에서 가장 못살지언정 차마 세계 7위 무역대국의 제1야당처럼 부끄럽게 살 수는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자유한국당은 알바니아의 과거만 반복적으로 들췄을 뿐 현재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알바니아에서 버려졌지만 선거제도가 과거로 회귀한 건 아니다. 대신 알바니아는 북유럽 국가들(권성동 의원의 표현대로라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들이다)이 채택한 완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한국에 도입한다면 자유한국당 의석을 단박에 수십 석이나 증발시켜버릴 선거제도다.

아직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통합사회주의운동당(LSI)은 2005년 알바니아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을 단 한 명 배출했을 뿐인 비례대표 전담 정당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주장대로라면 ‘위성’에 머물러야 할 이 정당은 선거가 끝난 뒤 생존을 모색하며 모(母)정당을 배신하고 반대편 집권 여당에 붙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통합사회주의운동당은 현재 알바니아 국회 의석 15%를 점유하는 독자 세력으로 자랐다. 자유한국당은 새 선거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알바니아의 사례를 눈여겨보았겠지만, 미래의 미래한국당 의원들 역시 알바니아의 사례를 진지하게 연구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그 가능성에 꽤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것은 우리 우주의 도덕적 균형을 간신히 붙들어온 비밀이다. 원칙이 없는 자들은 배신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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