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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한민국 미국대사 아직도 ‘총독’인가 / 안문석

등록 2020-01-23 17:59수정 2020-01-26 11:42

안문석 ㅣ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반도평화연구소장

장면 #1

1960년 4월19일. 학생혁명이 발생하자 주한 미국대사 월터 매카너기는 즉각 대통령 이승만을 찾아갔다. 많은 주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학생들을 심하게 다루면 안 된다, 야당 지도자들을 압박하면 안 된다 등등. 3·15부정선거가 혁명의 원인임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고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갔다. 3·15선거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새로 선거를 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장면 #2

1961년 5월16일. 육군 소장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주한 미국 대리대사 마셜 그린과 주한미군 사령관 카터 매그루더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총리 장면의 정권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매그루더는 한국군의 군사령관들에게 쿠데타에 협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장면 #3

1998년 5월21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임동원이 주한 미국대사 스티븐 보즈워스를 만났다. 6월 예정된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했다. 김대중은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보즈워스는 “연설은 포괄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얘기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길이도 너무 길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아이엠에프(IMF)의 구제금융이 한국경제 회복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부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가 자기 나라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주한 미국대사는 초대 존 무초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요구사항을 내세우는 일을 반복해왔다. 1960년대 한국이 미국과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때에는 물론이고, 1970년대 일정 부분 ‘현실주의적 영향의 관계’를 형성하던 시기를 거쳐, 1990년대 후반 이후 ‘좀 더 균형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없어 보인다.

최근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강조한 날, 그는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의 속도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대사가 한국 대통령 말을 정면 반박하는 양상이었다. 해리스는 지난해 9월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비무장지대(DMZ)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도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 동맹은 대표적인 비대칭 동맹이다. 미국은 안보를 제공하고 우리는 국가 자율성 일부를 양보해왔다. 미국이 우리의 안보 일부를 맡아주는 대신 국가 자율성이라는 주권적 요소를 일부 양보하는 것이어서, 교환되는 가치가 대칭적이지 않은 것이다.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의 발언권이 조금씩 향상되어왔고, 진보 정부들은 그나마 할 얘기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한국의 국가 자율성을 많이 양보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미국대사 해리스의 발언은 이런 미국의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의 성격,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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