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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종교 지도자’가 주는 독배 / 한승훈

등록 2020-01-27 18:08수정 2020-01-28 02:37

한승훈 ㅣ 종교학자

다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온다. 종교 연구자로서는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이 주기적 의례의 기간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간다. 정치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신경을 쓴다. 선거 기간이 되면 지역구 후보부터 각 정당의 대표자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이 저마다 ‘격’에 맞는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면 지역 대형교회 목사로부터 거대 종단 조직의 수장에 이르는 종교인들은 종종 고도로 정치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하나 마나 한 메시지와 덕담을 내놓는다. 일반적으로 ‘거물들’ 사이의 교류는 그 자체로 서로의 영역에서 각각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수준을 넘어서는 양자의 ‘결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종교인들이 정치인들에게 지지를 약속하고, 정치인들은 종교인들의 (일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인) 의제를 받아오는 식이다. 정치인들로서는 종교인들의 지원 여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인들의 직업적 이상을 완벽히 실현한 환경에 놓여 있다. 대중은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모여서 아멘이나 합장을 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것도 매주!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만 얻을 수 있다면 선거에서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런 가정은 대체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과거 주요 선거 이후 종교 소속과 투표에 관련된 조사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종교는 불교다. 불교 신자들은 개신교, 가톨릭 등 다른 종교 전통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비율로 자유한국당계 보수정당들에 투표했다. 민주화 이후 보수적인 정치적 발언이 주로 개신교 목사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오늘날 극우 시위를 주도하는 것들도 이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결과다. 비밀은 지역별, 연령별 인구에 있다. 불교 인구는 영남 거주자, 그리고 50대 이상에서 가장 많다. 이들은 종교가 무엇이든 보수정당에 가장 많이 투표한다. 그러니까 종교 소속은 지역이나 세대, 계층 같은 다른 요인들에 비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물론 종교와 정치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종교성은 대단히 여러 층위로 되어 있다. 불교, 기독교 등 종교 소속은 그 가운데 극히 얇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종교적 지도자의 의견에 대한 수용 정도는 어느 종교 전통에 속해 있느냐보다는 메시지의 범주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몇몇 연구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도덕적 교의나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정치적 주장은 거의 흘려듣는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종교인들, 그 가운데에서도 목소리가 큰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여론의 척도로 과도하게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리버럴 내지 진보 세력의 정치인들에게 이는 독배나 다름없다. 종교인 과세나 동성혼 등과 같은 이슈에서 전통적인 지지층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언컨대 선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종교 지도자들의 보수적 주장에 동조하는 메시지를 내놓아도 어차피 그들의 ‘정치적’ 발언에 반응하는 유권자들은 진보적 세력에 표를 주지 않는다. 반면 설교에서 뭐라고 하든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찍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던 정치세력에 실망하여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이 생긴다.

오히려 진보적 정치세력이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적 사안이 종교에 의해 ‘도덕적’ 사안으로 흡수되는 일이다. 신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메시지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도덕적 충고에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이 부시나 트럼프를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지도자로 내세운 것은 효과가 있었다. 결국 ‘종교표’를 끌어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력 종교인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일보다는 그들의 부당한 영향력을 차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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