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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유엔사의 ‘DMZ 법질서’ 존중해야 / 제성호

등록 2020-02-03 18:47수정 2020-02-04 02:08

제성호 ㅣ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엔사와 DMZ 주권

유엔사가 지난해 12월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를 방문한 대한민국 육군 사령관 쪽에 비무장지대 출입규정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엔사는 지난해 6월 국방부 장관이 협조 요청까지 했음에도 “안전상 이유로” 독일 정부단의 디엠제트 출입을 막았고, 8월엔 통일부 장관이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고자 했으나 “주민 불편”을 이유로 수행기자단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방문 자체를 무산시켰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개한다. 하지만 규정이 있다. 다만 한쪽은 정전협정상 디엠제트 출입허가권을 유엔군사령관이 갖는다는 입장만 세우고, 한쪽은 협정상 ‘비군사적 성질’의 출입에 대해선 불허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더한다.

반세기 넘은 규정과 유엔사의 연원에 대한 해석부터 부딪히는 셈이어서, 명쾌하게 정리되기 어렵다. 규정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왜 다른지 짚어보는 이유다. 오직 명확한 건,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디엠제트 방문도 불허할 수 있단 사실이다.

유엔사(UNC)는 1950년 7월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제84호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안전보장기구로 창설됐다. 6·25전쟁 시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같은 해 7월24일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것이다.

유엔 헌장 제43조(집단안전보장용으로 제공할 병력 규모와 구성에 관한 안보리와 개별 회원국 간의 ‘특별협정’ 체결을 명시)에 근거한 ‘진성(眞性) 유엔군’의 설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안보리는 유엔사를 ‘미국 주도’로 창설할 것을 ‘결정’하고 사령관의 임명권을 미국에 ‘위임’했다. 또 유엔사에 대해 유엔기(旗) 사용을 ‘허가’하고 그의 활동을 매년 안보리에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이처럼 유엔사는 ‘유엔 관련성’과 ‘미국 기관성’을 함께 갖고 태어났다. 이후 총회는 1950년 10월7일 결의 제376호, 1951년 2월1일 결의 제498호 등을 통해 유엔사의 활동을 지원, 합법화시켰다.

일부에선 유엔사가 오늘날의 다국적군과 유사하다며 ‘유엔 기관성’을 부인한다. 또 안보리 결의는 통합군사령부의 설치를 인가했을 뿐이므로 유엔사 명칭 사용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유엔사는 헌장 제39조와 제42조에 근거를 둔 집단안전보장군으로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다국적군은 ‘집단적 자위군’으로 유엔기를 사용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종래 안보리와 총회는 다수의 결의에서 ‘United Nations (Unified) Command’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안보리 결의 제88호, 총회 결의 제376호 등), 이는 유엔사의 실체 및 ‘유엔 기관성’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군은 ‘집단방어적 유엔군’과 ‘평화유지적 유엔군’으로 대별된다. 유엔사는 전자, 1956년 이래 창설된 다수의 유엔평화유지군(PKF)은 후자에 해당한다. 다만 유엔 사무국은 1994년 이후 유엔평화유지군과는 달리 유엔사를 유엔 ‘산하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후임 사령관 임명에 안보리의 불관여, 보조기관 목록 비등재, 유엔의 경비 불사용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그러나 유엔사는 집단안전보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유엔 설립 초기 헌장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안보리와 미국이 협력, 공동 대처한 사례였다는 점과 유엔평화유지군은 헌장상 명시적 근거 없이 출발했음에도 냉전 시기를 거치며 제도적으로 안착한 반면 유엔사 모델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유엔사는 북한군 침략 격퇴(전쟁 억제), 휴전협정 집행, 유사시 병력 제공자 역할, 주일 유엔군 후방사령부 통제, 통일(통일·독립·민주정부 수립) 지원의 5대 기능을 수행한다. 이 중 두번째는 휴전협정 제17항, 세번째는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체결일에 발표된 참전 16개국 공동정책선언(워싱턴선언), 다섯번째는 총회 결의 제376호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4년 이래 진행돼온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은 워싱턴선언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유엔군사령관이 별도 사전 통보 없이 비무장지대(DMZ)를 출입하여온 한국군의 관행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개별관광 구상 등 ‘독자적 남북관계 발전’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구라고 풀이한다. 유엔사가 그동안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행동을 해왔다며 ‘조기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엔사는 휴전협정 집행 책임에 기초하여 협정 틀 내에서 디엠제트 출입질서를 설정·유지할 권한이 있다. 한국은 유엔사의 관할권, 법과 원칙에 따른 조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간 유엔사는 디엠제트 내 남북관리구역 개방과 철도·도로 연결 지원, 철원·파주 ‘디엠제트 평화둘레길’ 설치 및 민간인 출입 승인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사실에서 보듯 남북교류협력을 고의로 방해한다는 인식은 옳지 않다. 다만 유엔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사령관 직을 겸직하는데, 후자의 지위에서 핵무장 등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비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이에 유엔사가 군사적 대비태세 유지·강화와 한미공조의 필요에서 때로는 디엠제트 법질서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유엔사가 항상 한국 정부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나 갈등이 있다면 적절한 채널에서 상시 문의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처리하는 게 맞다.

정치적 선언의 일종인 ‘종전선언’이 채택되더라도 법적 구속력을 갖는 휴전협정이 당연히 실효되는 건 아니며, 유엔사 역시 해체되지 않는다. 반면 안보리 결의와 휴전협정 등에 의해 유엔사의 존속과 그 고유 임무가 보장돼 있다. 따라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시까지는 유엔사 존치의 입장에서 남북군사대화 채널과 유엔사-북한군 채널을 병행하며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평화체제 전환 후에도 무조건 유엔사를 해체하려 하기보다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성격을 변경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맡게 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나토(NATO) 체제하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안보협력을 기반으로 결국 평화통일을 이룩해낸 서독의 경험을 반추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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