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ㅣ 한국외대 명예교수(국제법)
유엔사와 DMZ 주권
유엔사가 지난해 12월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를 방문한 대한민국 육군 사령관 쪽에 비무장지대 출입규정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엔사는 지난해 6월 국방부 장관이 협조 요청까지 했음에도 “안전상 이유로” 독일 정부단의 디엠제트 출입을 막았고, 8월엔 통일부 장관이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고자 했으나 “주민 불편”을 이유로 수행기자단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방문 자체를 무산시켰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분개한다. 하지만 규정이 있다. 다만 한쪽은 정전협정상 디엠제트 출입허가권을 유엔군사령관이 갖는다는 입장만 세우고, 한쪽은 협정상 ‘비군사적 성질’의 출입에 대해선 불허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더한다.
반세기 넘은 규정과 유엔사의 연원에 대한 해석부터 부딪히는 셈이어서, 명쾌하게 정리되기 어렵다. 규정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왜 다른지 짚어보는 이유다. 오직 명확한 건,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디엠제트 방문도 불허할 수 있단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국면 속에서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북한 개별관광 시대를 열겠다는 자주적 남북협력사업을 천명했다. 그런데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개별관광에 대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한-미 실무그룹 틀 내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이를 정면 반박하는 외신기자 간담회를 했다. 이제까지 유엔사와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점검이나 비군사적 목적으로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때 번번이 한국을 방해한 바 있다.
주한미국대사의 이러한 발언과 유엔사의 남북교류협력사업 방해는 한국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남북합의가 이행이 안 되는 최우선 이유가 유엔사와 미국에 있다는 점을 국민들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도대체 유엔사의 법적 문제는 무엇이고 향후 출구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가. 이를 위해 유엔사의 연혁과 법적 지위를 우선 알아본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7일 안보리 결의 1588호는 한국을 돕기 위해 보내온 21개국 군대의 통합지휘 부대명을 통합군사령부라고 명명하고, 미국 정부가 그 사령관을 임명하고, 참전국의 국기와 더불어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동시에 통합군사령부는 그 활동을 유엔 안보리에 모두 보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1950년 7월24일 일본 도쿄에서 통합군사령부 부대를 창설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유엔과 상의도 없이 부대 명칭을 유엔사(United Nations Command: UNC)로 바꾸고, 그 사령관에 맥아더 장군을 임명했다. 이로 인해 통합군사령부는 외관상 마치 유엔의 군대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유엔사 본부가 1957년 7월1일 서울로 옮기면서 유엔사 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합참사령관을 겸임하게 되었다. 현재 도쿄에는 유엔사 7개 지부가 있고, 이 7개 일본 지부는 일본 자위대와 더불어 한반도 유사시 병참 협력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전이 끝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하면서 유엔사는 현재 1953년 정전협정 남쪽의 유일한 서명 당사자가 됐다. 또 유엔사 창설 열흘 전인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통합군사령관(유엔사)에게 넘겼다. 1978년 11월17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자, 유엔사의 작전지휘권은 다시 한미연합사로 넘어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엔사의 임무는 1953년 7월27일 한국정전협정 남쪽 서명 당사자로서 정전협정 관리, 군사적 충돌 및 적대행위 방지 그리고 평화협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사가 군사분계선 통과와 비무장지대(DMZ) 출입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유엔사의 이러한 임무가 남북철도·도로 연결사업 등에 큰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4·27 판문점선언 이후 가장 큰 임무인 평화협정에 협력하기보다는 남북교류협력에 트집을 잡고, 제동을 걸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과도한 통제 또한 마찬가지다.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유엔사의 이러한 소극성 내지 이 지역에 대한 ‘엄격한’ 출입 통제는, 유엔사와 미 국무부가 1950년 10월12일 유엔 결의안에 의거, 38선 이북 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1954년 11월17일 행정권 이양만 인정한다는 법적 근거에 연유한다.
그러나 유엔사의 법적 성격을 보면, 유엔과 무관하다는 것이 유엔 사무처의 공식 입장이다. 유엔에 아무런 활동 보고도 하지 않고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4년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사의 법적 성격을 묻는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에서 유엔사는 유엔 하위 기구가 아니고 미국 통제를 받는 기구라고 답변한 바 있다. 실제로 유엔사 간부를 미군당국이 임명한다. 즉, 미국이 유엔사 모자를 쓰고 한반도 기득권 유지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다. 유엔사 일본 7개 지부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재침략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엔사는 유엔 제재 틀 내에서도 비군사적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제적 차원에서도 유엔사 해체 문제가 이미 논의되고 있다. 제30차 유엔총회(1975년 11월18일)에서 해체 결의(북쪽)와 해체반대 결의(서방 쪽)가 동시 통과되어 유엔사 권위가 많이 손상되었다. 전자인 유엔사 해체 결의의 핵심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 유엔사의 핵심 역할은 대북 억지 기능보다는 정전협정의 유지 관리를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돕는 일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위의 복잡한 법적 문제 출구전략으로 4·27선언의 자주와 평화 정신에 입각해 북쪽과의 충분한 협의 후 현재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유엔사’를 ‘대한민국’으로 교체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만약 향후에도 유엔사가 남북교류협력을 방해한다면,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 임무를 대한민국에 위임하고, 종료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이제 한-미 간에 공식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실무전문가팀을 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