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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다양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이원재

등록 2020-02-04 18:18수정 2020-02-05 13:51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고정적 소득이 생기면 좀 다른 식당에 가서 다른 걸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저트도 먹어볼 수 있고요. 여유가 없고 불안하니 하던 것만 하게 되더라고요. 단 하나의 선택이라도 실패하면 너무 타격이 크기 때문이죠.”

‘안전하다’는 생각으로부터 다양성과 혁신이 나올 수 있다는 역설을 순간 떠올렸다.

‘최인아책방’에서 독자들을 만나 기본소득에 대한 강의를 했다. ‘내년부터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국민기본소득제’의 가능성에 관해서 설명했다.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소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돈을 받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쓰게 될지, 어느 정도 액수가 충분한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이야기했다. 조건 없는 소득이 있다면 ‘선택의 자유’가 커질 수 있겠다고.

순간적으로 ‘정곡을 찌른 토론’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유가 없다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다. 실패해도 괜찮은 상황이라야, 점심 메뉴라도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다면, 혁신도 일어나기 어렵다. 사람들이 여유가 없어 가던 식당만 가게 된다면, 선택하던 메뉴만 계속 선택하게 된다면, 새로운 식당이나 새로운 메뉴가 등장하기는 어려워지고, 등장하더라도 지속되기 어려워진다. 잘되는 식당만 잘되고, 잘 팔리던 메뉴만 지속된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측면에서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가장 턱밑에 차는 것은 생물학적 위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공포를 건드린다. 지금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 차원의 공포다. 기후위기는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공포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멸종을 예고한다. 노동 현장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망사고는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의 초상을 보여준다.

사회적 안전에 대한 위협도 점점 커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이어주던 수직적 위계구조는 깨지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이어주는 수평적 협력구조는 쉽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차이는 차별로 이어진다. ‘너는 나와 다르다’는 생각은, 협력구조가 없는 경우 ‘너는 우리 사회 일원이 될 수 없어’로 바뀌고 만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을 느끼게 되어 있다.

경제적 안전에 대한 위협도 원초적이다. 가구주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일어난다. 대부분 극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실직과 소득 단절의 공포 때문에 벌이는 일이다.

안전을 위협받는 일은 그 자체로도 문제다. 그런데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획일적 선택을 하게 되고,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고 침체된다는 문제 역시 더욱 심각하다. 성장과 혁신의 기회가 사라지면 위협을 없앨 가능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위협은 우리를 집 안에 묶어둔다. 차별과 혐오는 우리를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교류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만들고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를 차단한다. 사회적 자본을 쌓을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경제적 불안은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도 창업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혼인과 출산 의사를 꺾는다. 경제적 성장과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꼭 폭발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에너지는 넘치는데 그 에너지가 대부분 갈등을 심화시키는 데 쓰인다. 긍정적 방향으로 다양하게 분출되면 훨씬 생산적일 수 있는 에너지가 파괴에 사용되고 있다. 고성장 시대를 이끌었던 다양한 제도는 무너지고 있다. 가부장적 문화와 수직적 위계구조가 대표적이다. 전통적 성역할 구분도 그중 하나다. 그런 중에 낡은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정면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넘치는 에너지를 잘 유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핵심이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가치가 더 강력하게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신, 각기 다른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구조를 짜야 한다.

다양성을 높이려면 큰 틀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안전하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경제적 안전은 기본이다.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가능한 제도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제와 같은 생계보장 조처가 유력한 대안인 이유는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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