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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청년 공약이 아닙니다 / 김선기

등록 2020-02-05 18:41수정 2020-02-06 02:37

김선기 ㅣ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정의당의 21대 총선 1호 공약은 ‘청년기초자산제’다. 만 20살에게 보편적으로 3000만원의 자산을 국가가 지급한다는 아이디어다. 탕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용처를 학자금, 취업준비금, 주거 비용, 창업 비용 등으로만 제약하며, 개인은 1년에 1000만원씩 3년간 기초자산을 인출해 사용하거나 향후 목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저장해둘 수 있다. 아동양육시설 퇴소 청년 등에게는 5000만원까지 늘려 지급하고 상속 증여를 받는 자에게는 일정 금액을 환수받는 방식으로 차등을 둔다. 정의당은 이를 위해 연간 최대 18조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했으며, 상속세나 부동산 관련 조세 등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통념과 달리, 나는 청년기초자산제가 청년 공약이 아니라고 본다. 세가지 근거를 들어보겠다. 우선 이 제도가 도입된다 한들 현재의 2030 유권자들에게 직접 이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청년은 이미 대상 연령인 만 20살을 지났다. 법안 통과·설계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현재의 만 18살 시민들도 직접적 수혜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가 각자의 물질적 이해관계에만 반응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1~2년 차로 제도가 포괄하는 범위에서 빠지게 될 청년은 오히려 박탈감이나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여당이 내세우는 모병제 역시, 비슷한 논리로 청년들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공약이라 볼 수 있다.

둘째, 자산은 만 20살 개인에게 지급되지만, 그 이익은 다른 세대와 나누어 갖는다. 등록금, 취업 준비 비용, 주거자금, 결혼자금과 육아 비용 등 성인으로의 이행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청년 개인의 근로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비용은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을 통해서 사적으로 메꾸어져왔다. 청년에게 자산이 생긴다면, 대출까지 받아가며 무리하게 자녀의 자립 비용을 마련해야 했을 부모 세대의 부담이 일정하게 줄어든다. 기초자산의 용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자산은 청년을 거쳐 대학이나 학원, 임대업자 등으로 흘러들어가 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셋째, 이 제도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청년 문제’가 아니라 세습과 불평등이다. 그간 청년 문제는 주로 교육 이후 노동시장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으로 특정되어왔고, 따라서 제도가 고용 이행이나 진로 탐색 등에 집중되었다. 청년기초자산제는 기존 청년정책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이 제도가 목표하는 바는 청년들의 취업률 상승이나 단순 생활 안정 등이 아니라 청년층 내 자산 불평등과 격차의 세대 간 전이 해소에 있다. 최근 화제작인 사회과학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중산층의) 세습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맥락과 연결된다. 만 20살 청년이라는 대상은 그 시기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상대적으로 효과적일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선택된 것이지, ‘청년’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많은 불평등 연구는 정책적 개입 연령이 낮을수록 정책의 효과가 더 커지는 것으로 본다.

지난해 청년기초자산제와 유사한 정책안을 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회의를 진행한 일이 있다. 당시 한 참여자는 이렇게 발언했다. 대다수 청년과는 직접적 관련도 없는 정책의 이름에 ‘청년’이 들어가면 “청년한테 또 줘?”라는 반응이 나올까 걱정된다는 요지였다. 그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많은 청년에게 해당하지도 않는 청년정책과 청년 공약을 양산해왔다. 청년의 이미지만 재차 소비되고, 청년을 ‘기생적인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편견은 강화되었지만, 우리가 이 정책과 제도로 어떤 문제를 풀고자 했는지, 실제 내용은 지워져왔다. 청년기초자산제라는 이름도 그렇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세습과 불평등보다는 청년 포퓰리즘 논란으로 의제가 형성될 수 있는 빌미를 이 명칭 자체가 제공한다. 대강 그럴듯해 보이지만, ‘청년’이라는 말을 빼는 게 더 옳은 순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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