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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중국에서 신천지까지 / 한승훈

등록 2020-02-24 18:31수정 2020-02-25 09:36

한승훈 ㅣ 종교학자

현대인에게 종교란 의심스러운 무언가이다. 남의 종교는 특히나 미심쩍다. 더구나 새로운 종교들은 너무나도 수상하다. 종교 연구에서는 고전적인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과 구분되는, 근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종교들을 ‘신(新)종교’라는 용어로 부른다.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된 개념이지만, 여전히 일상에서는 ‘신흥종교’, ‘이단’, ‘사이비종교’ 등의 이름이 널리 쓰인다. 미심쩍고 수상한 타자의 믿음을 가리키기에 신종교라는 말은 객관적이기는 해도 너무나 밋밋하기 때문일 터다.

신종교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스캔들’이 일어날 때이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 백백교의 연쇄살인을 비롯한 음울한 사건들, 세계적으로는 1970년대 발생한 미국의 존스타운 집단자살 사건이나 1990년대 일본의 옴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이런 충격적인 사태들은 신종교들을 잠재적인 범죄집단으로 상상하게 한다.

코로나19의 ‘슈퍼전파자’로 지목되고 있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은 ‘기독교계 신종교’로 분류된다. 기독교 전통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종교라는 점에서는 과거에 주목받은 통일교, 구원파, 천부교 등과 같지만, 최근 한국 기독교 내에서는 ‘가장 위험한 이단’으로 특히 경계의 대상이 되던 참이었다. 기존 교회에 침투해서 신자들을 ‘추수’하는 공격적인 전도방식이 위협이 됐던 탓이다. 신천지는 이 방법을 통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인상적인 교세 확장을 이루었다. 수년 전부터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공개적인 지역 센터를 설치하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적극 대응하는 등의 활동을 벌여 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장 우려되었던 사태인 지역사회 감염이 신천지 관련 행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더 이상 해외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신천지 신자들을 통해 감염이 확산된 것은 현시점에서는 순전히 우연이다. 최초 감염자는 해외에 다녀오지 않았고 감염경로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 또한 분명하다. 교단의 공식적인 조치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적어도 일부에서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 반(半)공개적인 조직문화 또한 사태 악화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건으로 신천지는 기독교의 공적에서 국민의 공적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유학생이나 교민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맹목적 혐오가 좀 더 객관적이고, 적합하며, 반론의 여지가 적은 대상을 향한 분노로 전환된 셈이다.

그럼에도 신천지 교인들, 혹은 신천지 교단을 병마의 제단에 희생양으로 올리는 것만은 여전히 망설여진다. 신천지가 감염 확산의 통로가 된 것은 수상한 신종교라서도 아니고, 그 교의 때문도 아니며, 교단의 전모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조직 특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비공개 정치조직이나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더라도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비난하기에 편한 타자라고 해서 혐오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신천지 교인을 표적으로 한 비난이 격화될수록 교단 존립의 위기에 처한 신천지 입장에서는 개인이나 조직 차원에서의 은폐를 시도할 이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감염자의 절반이 신천지 신자인 이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가? 신천지 집회 참여자에 대한 방역 당국의 조사 또한 혐오 행위인가? 그렇지는 않다. 필요한 조치는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전까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염 지역과 접점이 없는 이들까지 의심하고 비난하는 광기를 보았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바이러스’ 취급을 받기도 한다.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서 예외는 없다. 인종 때문이든, 종교 때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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