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란 ㅣ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경남 서남쪽에서 국도 33번을 타고 합천군으로 들어서면 숨 쉬는 것부터 달라지는 듯하다. 입구에는 40만㎡로 자연생태 보고이자 곳곳에 신비함이 깃든 정양늪이 있다. 바로 이어 눈앞에 황강의 휘돌아가는 물길과 흰 모래밭이 펼쳐진다. 강 건너 함벽루와 합천 대야성이 있어 지역 역사가 오롯이 느껴지는 곳이다. 황강 물길은 제2남정교를 지나 합천대교로, 다시 강양교를 지나 크게 반원을 그리며 영전교로 휘돌아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합천대교와 영전교로 이어지는 황강 주변은 강과 인간의 공존 지역, 아직 손대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사업을? 다소 황당하다. 최근 경남 합천군이 공식 발표한 ‘황강 직강사업’은 합천읍과 경계인 율곡면 임북리 합천대교에서 문림리 영전교에 이르는 반원 형태의 하천 8.7㎞를 길이 4.4㎞, 너비 320m로 직선화해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터(퇴적지) 330만㎡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국가산업단지와 국제복합도시·물류단지·주거지 등을 유치,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앞으로 건설될 남부내륙고속철도 역사를 유치하고 울산~함양 고속도로와 연결, 역세권 개발과 신성장산업부품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꼬박 10년이 걸리는 사업으로 총예산이 1조1100억원이다. 어째 ‘합천군식 4대강 사업’ 모양새다.
사업 대상 지역인 황강은 합천군의 7개 읍·면을 통과하는 주요 자원으로 황강의 역사는 합천군의 역사라 할 만하다. 황강은 낙동강의 지류로 길이가 119㎞에 이른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남덕유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경남 동남쪽으로 흘러 상류에서 합천호를 이루었다가 합천읍을 휘돌아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합천군 인구는 4만5천명 정도, 행정구역은 1읍 16면이다. 군의 1년 예산은 5천억원 정도다. 황강 직강사업의 총예산이 1조가 넘는다니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치고는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엄청난 예산이다. 합천군은 1조가 넘는 재원 마련을 위해 앞으로 대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를 찾겠다는데 대기업이 왜 여기에다? 외국인 투자자가 왜 여기에다? 좀 더 대놓고 말하자면 대기업, 외국인 투자자가 이 ‘깡촌’에 왜 투자를 하겠느냐 말이다. 딱히 투자유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기업이든 뭐든 ‘유치하겠다’인데 딱히 기업유치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기업유치가 자치단체 마음대로 되겠는가. 안타깝게도 공들여봤자 합천군의 일방적인 구애로 그칠 수 있다.
조금 성격이 다르긴 하나 합천군 인근 지역에 있는 진주 정촌 뿌리산단 조성 사업을 살펴보자. 주식회사인 진주뿌리산단개발은 2013년 민관 합동 출자 법인(민간 60%, 진주시 40%) 형태로 출범하면서 26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했고, 정촌면 일대 96만4533㎡ 규모의 산단을 조성했다. 목표는 기업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였다. 하지만 준공 몇 개월을 앞둔 지금 분양률이 저조해 난항을 겪고 있다. 분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준공 5년 뒤 지분비율만큼 진주시가 책임을 떠안게 된다. 전국적으로 뿌리산단 조성 지역 대부분이 같은 사정이다.
인구 고령화와 감소, 다가오는 소멸 위기와 공포감이 무모한 개발 계획을 이끈 걸까. 그렇게 이해하려 해도 기초자치단체장이 살길을 찾겠다며 내놓은 사업치고는 황당하다. ‘청정 지역 환경’과는 너무나 다르고, 개발 사업 근거는 약하고, 기대효과 또한 불확실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에 합천군을 비롯한 경남 도내 지역민의 우려와 반대 여론에 휩싸이고 있다.
합천군은 사업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인구 증대 1만명, 1조3천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유치와 기업유치가 되지 않는다면 그렇잖아도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합천군이 짊어질 그 결과는 더욱 참혹하다. 자치단체장의 어설픈 상상이 장밋빛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우려되는 황강 생태계 파괴는 투자 이윤 셈법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여기서 아예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황강 사업은 ‘황당 사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