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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포스트 봉준호·홍상수를 위해서 / 유선희

등록 2020-03-01 18:42수정 2020-03-02 02:40

유선희 ㅣ 문화팀장

2020년은 한국 영화계에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 틀림없다. 지난달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1일 베를린에서 또다시 낭보가 날아들었다. 현지시각으로 29일 폐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이 그의 24번째 장편인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에 해당하는 감독상을 거머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수상 소식이 더 반가운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영화계가 올스톱된 상황에서 전해진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2월 전체 관객 수가 734만여명에 그쳐 2014년 4월(920여만명)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영화계는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최근 1년 사이 칸과 아카데미에 이어 베를린에까지 깃발을 꽂은 한국영화는 이제 변방에서 중심으로 확실히 그 좌표를 옮겨 적게 됐다. 케이팝에 이어 케이무비가 한류 문화 수출의 새로운 첨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저 장밋빛 낙관론에만 그치진 않을 듯싶다.

하지만 한편에선 영화계가 이런 겹경사의 기쁨을 이어가려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5일까지 1325명의 영화인이 서명에 참여한 ‘포스트 봉준호법’과 지난 19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오석근 위원장 등 위원 9명이 발표한 ‘영화산업 경제민주화 제도 마련과 관련된 요청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꼽는 해결과제는 그간 영화계에서 수없이 지적돼온 숙원사업들이다. 먼저 대기업이 배급과 상영을 겸업하는 수직계열화 문제다.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를 살펴보면, 극장 입장료 매출의 97%를 차지하는 씨제이·롯데·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배급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다. ‘포스트 봉준호법’에 서명한 영화인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미래의 봉준호들이 반지하를 탈출하는 데 쓰일 자금이 극장으로 흡인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패러마운트법(1948)처럼 한국도 상영·배급의 겸업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영화 한 편이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스크린 독과점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겨울왕국2>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상영점유율은 70~80%에 달했다. 스크린 10곳 중 7~8곳이 이들 영화만 상영했다는 뜻이다. 영화 한 편이 1일 상영 횟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프랑스와 같이 우리도 ‘스크린 상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 상업영화 위주의 산업 생태계를 다양성이 살아나도록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영진위의 2019년 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영화 관객은 총 2억200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독립예술영화 관객은 810만명에 머물렀다. 전년보다 5.6%나 줄었으며, 최근 5년 중 가장 적었다. 영화인들은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독립예술영화 및 상영관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상업성보단 작품성에 방점을 찍은 작가주의 영화로 세계의 인정을 받는 홍상수 같은 감독을 또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영화계의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한 바 있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 국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요즘 젊은 감독이 (내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같은 시나리오를 가져왔을 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힘들 것 같다. 한국 영화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더는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시도나 모험을 하지 못하게 됐다. 한국 영화계가 리스크를 두려워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를 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 영화계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처한 최근의 어려움은 몇 달만 지나면 해소될 단기적인 문제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은 수직계열화, 스크린 독과점, 독립예술영화 소외 등은 한국영화의 향후 100년을 가늠할 장기적이고 중차대한 문제다. 영화계는 물론 곧 출범할 21대 국회, 그리고 정부의 전향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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