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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팽’당하는 신자유주의와 한국

등록 2020-03-03 18:31수정 2020-03-04 02:09

나는 요즘 미국 대선의 상황을 대단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이야말로 전세계에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강요해온 나라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도입’이라 하지만, 사실 23년 전에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게 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뒤에 숨어 있었던 미국의 대자본이었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이식당했지만, 주요 국유 기업들의 전면적 민영화를 거부한 유고슬라비아와 이라크는 각각 1999년과 2003년에 이런저런 핑계로 미국의 침공까지 당해야 했다.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가 미국을 맹주로 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폭격 등으로 그 정권의 몰락을 겪고 살인을 당해야 했던 주요 배경 중의 하나는, 미국이 그를 공개적으로 ‘자원 민족주의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펴온 자원 국유화와 ‘제3세계형’ 복지 정책은 미국이 주도해온 신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용서가 불가능한 ‘이단의 죄’였다.

그런데 이제 미국 자국부터 ‘이단’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놓고 사실상의 신보호주의 정책을 활용한다. 수입 의존을 줄여 자국 생산을 다시 장려하는 것이다. 그 덕에 미국 제조업에서 오래간만에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 시작되어 약 50만명이 신규 고용되었다. 고전적 신자유주의는 경쟁 우위 이론대로 저임금 국가에서 가공된 상품을 미국과 같은 고임금 국가가 수입하는 것을 ‘정상’으로 여겼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고용 창출과 ‘국가 안보’를 상대적 경쟁 우위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다. 타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자국 이기주의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한 접근이지만, 좌우간 로널드 레이건 이후의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트럼프가 보호주의자라면, 그의 대항마로 나서려는 버니 샌더스는 고전적 사민주의자이자 케인스주의자에 가깝다. 그의 ‘그린 뉴딜’ 정책 같으면 환경 위기를 고려한 현대판 케인스주의적 경기 부양책, 구매력 확대 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호주의자와 사민주의자 사이의 대결에서 신자유주의적 담론들은 거의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금 ‘작은 정부’나 ‘적하(트리클 다운) 이론’을 거론하는 대중적 정치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 이론을 믿어줄 대중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요람인 미국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가장 빨리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지만, 크게 봐서는 유럽의 상황 또한 ‘신자유주의의 점차적 후퇴’라고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온건우파 정권이 다소 신자유주의적 색채를 띤 연금제 개혁을 강행하려 하지만 전국적이며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지금 주춤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 동안 프랑스의 역대 정권이 다 복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복지 제도 개악들을 시도해봤지만, 그 결과를 보면 결국 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났다. 2008년 공황 당시 복지 지출은 프랑스 국내총생산의 28%였지만 지금은 31%다. 아무리 줄이려고 발악을 한다 해도 과소소비, 과잉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후기 자유주의 시대에는 복지 지출을 통해 하층과 중간층의 소비력을 강화시키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의 소득이 주도하는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그러니 특정 국가, 특정 정부의 이념적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복지 지출만큼은 꾸준히 늘어나거나, 적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극우파가 통치해온 폴란드 같은 나라라 해도 2008년 당시 국내총생산의 20%였던 복지 지출은 지금 21%가량 된다. 유럽의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에서는 복지 지출의 비율이 최근 몇년간 큰 변동 없이 25% 안팎이다. 신자유주의가 ‘복지 삭감’을 의미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자유주의 국가는 최근의 유럽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1990년대 말 이후의 러시아, 그리고 이란 등은 아예 처음부터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해왔지만 최근에는 ‘국가 주도’라는 부분이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국가가 보유하는 국유 자산은 중국에서 2008년 당시에는 국내총생산의 13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무려 240%나 된다. 2010년만 해도 전체 은행 융자금의 48%가 민간 기업들에 돌아갔지만 이제 그 비율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은행이 제공하는 자금 흐름의 83%나 국유기업에 흘러들어가는 형국이다. 신자유주의의 교과서와 정반대로 중국에서 국가 부문이 계속 커지고 또 동시에 복지 지출도 꾸준히 늘어난다. 복지 지출을 포함하여, 전체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년 동안 1.5배나 늘어난 것이다. 1990년대에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나 정부 지출 삭감 등을 골자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세계를 호령했다면 이젠 ‘중국 모델’이 카자흐스탄에서 터키까지 수많은 신흥 시장들에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의 자국 제조업 보호 정책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중국이 고수해온 산업 진흥 정책을 방불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일으킨 미-중 무역분쟁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중국과 싸우면서 그대로 중국을 닮아간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후퇴는 아직도 ‘종말’ 수준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총임금 억제 정책이 주요 경제에서 완전히 철회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저임금, 불안정 불량 일자리가 양산되고, 여전히 워킹푸어(일하는 빈민) 계층의 규모가 줄지 않는다. 사실 앞으로 구미권의 정치적 투쟁의 중심은 트럼프처럼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서 자국 자본의 이윤 저하를 상쇄시키려는 우파 보호주의, 신권위주의 세력과 대중적 구매력의 확충을 통해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는 샌더스와 같은 신사민주의 세력 사이의 대결일 것이다. 서방 블록에 맞서고 있는 중국·러시아·이란 같은 세계체제 준주변부의 경쟁 세력들도 앞으로는 갈수록 ‘시장’보다 ‘국가’의 역할이 더욱더 중심적일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세계적으로 대세가 아닌 만큼 한국의 진보세력들도 신자유주의로 기울어져 있는 한국 국가·사회 체제의 전면적 탈신자유주의화를 좀 더 과감하게 주장해야 한다. 샌더스 현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무상고등교

육, 무상의료야말로 세계적 시대정신에 해당될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 사유의 제한을 어떻게 둘 것인가와 등록금 없는 대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100%로 어떻게 올릴 것인가는 진보의 핵심적이고 구체적인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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