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호 ㅣ <옥천신문> 제작실장
노동의 외주화는 사실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자본은 기가 막히게도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서 착취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상 ‘공모'에 기반을 둔다. 입으로 글로 외주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쉬워도 막상 현 상황에 닥치게 되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랬다. 불과 1년 전 <옥천신문>은 매주 목요일 마감을 하고 인쇄를 경기도 한 인쇄소에 넘겼다. 인쇄의 질도 중요한 장점이었지만, 무엇보다 신문 포장까지 한꺼번에 해가지고 와서 별도 작업이 필요치 않은 효율이 있었고 가격 또한 저렴했다. 밤 12시, 1시쯤 작업물을 최종 넘기면 새벽에 띠지 작업을 한 이후에 새벽 5시에 신문이 포장된 채로 옥천까지 온다. 포장 작업을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몰랐고 그들이 얼마만큼의 임금을 받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기실 그들의 노동에 무감했던 것이다. 얼굴을 볼 수 없는 노동, 그 과정을 알 수 없는 노동은 늘 위험하다. 노동의 외주화가 곧 위험의 외주화로 연결되는 지점을 늘 기사로 비판하면서도 신문의 외주 작업에는 질끈 눈 감는 것이 맞는가 하는 성찰이 불현듯 들었다. 이에 대해 논의하면서 작업 시스템을 바꾸었다. 포장은 우리가 직접 하기로 했다. 옥천시니어클럽과 협업하면서 할머니 일자리를 무려 10명 가까이 만들었다.
그리고 포장 봉투도 옥천장애인보호작업장 장애인 노동자가 작업한 생산품을 쓰면서 장애인노동과 연계시켰다. 비용은 1.5배 정도 늘었지만, 얻는 부가가치는 많았다. 얼굴 있는 노동으로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할머니들과 작업하는 동안 트로트 음악을 틀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할머니들도 옥천신문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지역 일자리가 그만큼 만들어졌고 ‘할머니는 옥천신문을 다닌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결단하기까지 추가되는 비용과 번거로운 작업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들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고 순간의 결정이 많은 산재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니어클럽의 직원이 할머니들의 적당한 노동강도와 시간을 계산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일한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일이 끝나면 둘러앉아 김밥과 뜨끈한 어묵 국물을 같이 마시는 것도 참 좋다.
ᅠ이 밖에도 또 하나 자랑하자면, 옥천신문은 여든 언저리에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생애사를 정리해주는 ‘은빛자서전’을 연중 기획하며 매주 내보내고 있다. 뉴스는 늘 특별한 사람만 찾지만, 지역신문은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는 전제 아래 그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찾으려 한다.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고 싶다면 인터뷰를 통해 생애사를 대판 한 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정리해드린다. 이는 <여의도통신> 전 편집국장인 감사경영연구소 정지환 소장과 대전 추억의 뜰 김경희 대표와 작가 그룹들이 함께 협업하며 만들고 있는 공익적인 모델이다. 그냥 자서전을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지혜와 민초들의 시대상이 오롯이 담겨 있고, 부모에게 보내는 자식들의 편지까지 어느 글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자식들은 몰랐던 부모의 삶에 대해 알 수 있고, 주민들의 지역 시대상을 그 사람을 통해 볼 수 있다. 신문으로 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큰 족자로 별도로 제작해 선물해 드린다. 전부 무상이다.
이는 곧 의미 없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인터뷰했던 분들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족자를 걸어드린다. 절하고 부의금 내고 돌아오기 바쁜 우리의 장례문화는 은빛자서전 족자로 달라지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사라지기 바빴던 삶의 지혜가 그 족자로 해서 다시 살아난다. 농촌에는 고령 인구가 많아 아이 울음소리보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곡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오랫동안 지역을 지켰던 고목들이 하나둘 스러져갈 때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못내 아쉬웠다. 그 삶을 기록하는 것, 무명씨들의 이름을 다시 찾아주는 작업은 어느 일보다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이 고민의 결단이 아니라 마땅한 문화로 여기저기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